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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농민항쟁 6> 하의삼도 농민들 '민족해방 없이 토지 못찾는다" 항일연대 투쟁
하의삼도 농민들은 조선시대 세도가, 일제시기 식민지주, 해방이후 정부를 상대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300여년 간 끈질긴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였다. 특히 일제시기에는 국내외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세력과 연대하여 식민권력에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내 땅인데 왜 돈을 주고 사야 되나" 유상매수운동과 좌절 일제시기 하의삼도 토지문제는 하의도 농민들이 토지유상매수를 골자로 한 진정서를 총독부에 제출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24년 1월 31일 동아일보 첫 보도를 시작해 5월 들어 조선일보와 시대일보에서 300여 년에 걸친 하의삼도 토지분쟁의 역사와 총독부 진정 건에 대한 진행상황을 보도했다. 이들 언론들은 하의도 농민의 유상매수운동을 지지하면서도 "누구는 하의도 농민이 아닌자런고"라며 하의도를 넘어 조선 민족 전체의 문제임을 상기시키려고 했다. 하의삼도 주민들의 유상매수 시도는 그동안 토지가 다른 사람에 매수는 과정에서 몇 차례 시도된 적 있었다. 하지만 자금조달과 도민들 사이 의견조율 문제로 인해 실패했다. 이번에도 일본인 지주 도쿠다가 동양척식회사에 토지를 팔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김응재가 중심이 돼 '삼도주민총회'를 열고 22만원에 토지를 매수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언론을 통해 도쿠다의 토지매각을 압박 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수비용 조달을 위해 유력인사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식민권력의 지원을 받던 도쿠다의 방해와 함께 매수를 위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상매수운동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유상매수운동을 주도하던 김응재가 매수비용 조달을 위해 활동하던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소문과 연루되면서 그 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결국 자신들의 땅을 왜 다시 돈을 주고 사야 하느냐는 하의도 농민들 사이 부정적인 여론을 불식시키지 못하면서 유상매수운동은 실패로 귀결 됐으며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의도만 빼앗긴 게 아니었다-하의소작인회 활동과 해산 1920년대 하의삼도 농민들은 돈을 주고서라도 땅을 되찾겠다는 유상매수운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소작인회를 결성해 일본인 지주에 대항하며 생존권 투쟁을 이어오고 있었다. 1914년 일본인 지주 우콘과 체결한 '화해조서'를 통해 영구 소작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나 도쿠다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지켜지지 못했다. 농민들은 1922년 화해조서 조인을 주도했던 박응식의 아들 박장환을 회장으로 한 소작인회를 결성해 대응했다. 이들은 화해조서 불이행에 따른 소작료 납부거부 투쟁을 주도했으며 1924년 소작료 인하 등과 같은 소작 조건을 내세운 소작쟁의를 전개해 갔다. 도쿠다는 상애회 출신 친일인사인 박춘금을 내세워 섬 주민들을 회유하는 등 소작인회 활동을 방해하는 한편 일제 경찰을 동원해 소작인회 간부 수십 명을 검거했다. 이후 하의소작인회는 해체됐지만 이를 계기로 섬 주민들은 일본인 지주와 식민권력이 결탁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에 맞서 '항일' 기치 아래 다양한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뭉쳐야 한다-하의도농민조합 결성과 한·일연대 하의도 문제는 1927년 11월 일본노동농민당에서 파견된 변호사 후루야 사다오(古屋貞雄)가 신간회 동경지회대표 강소천과 함께 하의도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하의도 토지분쟁과 지주 도쿠다 불법차압 문제의 불법성을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하의도문제에 대한 여론을 주목시켰다. 이들의 방문은 1927년 1월 30일 오사카에 조직된 '하의노동청년회'의 지원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하의소작인회 최용도다. 그는 1924년 소작인회 간부가 검거될 당시 오사카로 도피한 뒤 하의도 출신 노동자 60여명을 모아 하의노동청년회를 결성 했으며 일본노동농민당 집행위원 아사히 겐즈이(朝日見瑞)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후루야의 방문에 이어 12월 말 일본노동농민당은 아사히 등을 보내 하의농민조합 결성을 지원 했으며 1928년 1월 2일 하의도 대리 구 학교 강당에서 하의도 주민 300여명과 함께 하의도농민조합 발대식을 열었다. 발대식에서 이들은 "앞으로 일치단결 해 조선 전 무산계급의 모든 운동과 결합하고 전세계 무산계급의 절대적인 응원 하에, 탐욕스러운 지주의 압박과 관현의 간섭을 용감하게 돌파하고 열악한 소작제도로부터 해방돼 광명의 큰길로 나아가기 위해 전진하자"고 선언했다. 이처럼 일본 사회주의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농민조합 결성을 이끌어낸 하의도 농민들은 국내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단체들과도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여개의 가맹단체를 거느린 전국적인 농민운동조직인 조선농민총동맹은 하의도농민조합을 지원하기 위해 박복영을 파견했다. 박복영은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을 이끌던 인물로 하의도 주변 도서인 자은도, 도초도, 지도 등지에서 농민조합 결성을 지원하는 등 연대투쟁을 주도했다. 신간회를 비롯해 경성변호사단, 조선기자동맹 등에서도 진상파악을 위한 특파원을 파견하는 등 하의농민조합은 국내 민족운동 진영과도 연대하며 식민권력에 대응했다. ●민족해방 없이 토지도 되찾을 수 없다-하의토지회수동맹 결성과 항일연대 1928년 결성된 하의농민조합은 국내외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단체들과 연대를 통해 反지주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反총독정치와 같은 항일 연대투쟁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1928년 4월20일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일본농민조합 전국대회에 격문을 보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다. 우리들을 지배하는 것은 극도로 반동화한 제국주의적 절대전제정부의 출장소인 조선총독정치 그것"이라며 일제 식민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조선 전 피압박민족의 해방 없이는 일본 무산계급의 해방도 있을 수 없다. 日鮮농민대중은 단결해 저 악지주(惡地主)를 타도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계급적, 민족적 해방을 위한 조선과 일본 민중의 연대를 재차 강조했다. 1928년 5월 10일 "하의도민(荷衣島民)의 단결(團結)을 견고(堅固)히 하야 저의 토지(土地)의 회수(回收)를 필사적(必死的)으로 회수(回收)" 할 것을 목표로 한 '하의도토지회수동맹'이 일본 오사카에서 결성됐다. 회수동맹의 강령 내용이나 지향성을 보았을 때 하의농민조합과 연관된 인물들이 주도해 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하의농민조합사건'을 통해 조선총독의 실체가 드러났으며 이를 통해 하의도의 문제는 하의도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압박피정복대중(全體壓迫被征服大衆)의 공동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하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의도 주민들의 단결뿐 아니라 국내외 '피정복대중'의 지원과 연대를 강화했다. 이들은 오사카에 본부를 두고 하의도에 지부를 뒀으며 '재만동포옹호동맹' '제주도공제조합반대동맹' '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동맹' 등 구체적인 연대 방향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각사회단체(各社會團體)에 격(檄)하야 하의도 문제(荷衣島 問題)를 정치문제화(政治 問題化) 하야 전민족적(全民族的)으로 항쟁(抗爭)을 확대(擴大)할 것"을 제시했듯이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계급투쟁을 넘어 항일 민족투쟁으로 완전한 전환을 선언했다. 이처럼 빼앗긴 토지를 되찾으려는 하의도 농민들의 의지는 일본인 지주를 넘어 식민권력에 맞서는 항일 연대 투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신안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맞춤형 복지 선도역할 앞장
신안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군민 복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나섰다. 25일 신안군에 따르면 복지를 디자인하고 마을단위의 촘촘한 복지실현과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신안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11일 압해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시작으로 8개 읍·면에서 개최된 읍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정기회의에서는, △우리동네 해결사 복지기동대 △맞춤형복지서비스 △긴급지원 △낙도이미용 △이동빨래방사업 등의 신안군에서 추진 중인 주요 복지사업의 이해와 함께 어려운 이웃을 발굴하고 복지서비스 연계 방안을 논의하는 등 코로나19로 움츠렸던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에 기지개를 켜는 첫 단추가 됐다. 신안군정신건강복지센터 주관 자살 예방 생명지킴이 양성교육 이수를 통해, 의료여건이 취약한 농촌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자살을 예방하고 응급상황 발생에 대비할 수 있는'지역의 생명지킴이'로서 능력도 배양하는 자리가 됐다. 신안군 관내 14개 읍·면에 각각 설립된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역주민과 마을 대표, 기관․단체장 등으로 구성된 200여명의 공공 및 민간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주민이 원하는 맞춤형 복지사업과, 마을단위 복지의제 발굴, 저소득 이웃 복지서비스 연계 등의 복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민관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신안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스위치와 리모콘을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등교체지원사업, 비위생적인 좌변기, 샤워기, 방충망 교체 등 관내 저소득 독거노인 및 장애인 250여 세대에 대한 생활환경개선지원 특화사업을 추진하며 열악한 주거 여건에 놓인 저소득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박철승 신안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공공위원장은 "코로나19로 움츠렸던 장기간의 활동 공백기가 어느 정도 해소된 만큼, 신안군의 촘촘하고 활기찬 복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읍·면 협의체 위원분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한다"며 "소홀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작은마을 단위에서부터 빈틈없는 복지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발로 뛰는 신안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되겠다"고 말했다.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백서' 발간
신안군은 전국 최초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실현 기록을 집대성한 공식 백서를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백서는 총 3권 2606쪽 분량으로 사진으로 된 화보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및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정책추진 전 과정을 한눈에 살펴보고 이해하기 쉽도록 제작됐다. 백서에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실현 과정에서 발생한 민·관 갈등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군의 대응 및 군민과의 소통 과정 등이 담겨있다. 정책 집행 과정을 상세히 기술해 사료로서의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백서는 앞으로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정책 추진에 중요한 디딤돌 역할은 물론 햇빛연금 실현을 기록한 신안군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안군 관계자는 "신안군의 사례가 지방자치단체의 혁신모델로 알려지고 '지속가능한 삶'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침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안군, 퍼플디저트 기술전수 교육
신안군은 지난 23일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떠오른 안좌면 퍼플섬을 찾는 관광객에게 다양한 먹거리 제공을 위해 카페 운영자를 대상으로 퍼플디저트 기술전수 교육을 실시했다고 24일 밝혔다. 교육대상자는 지난 모집 공고를 통해 관내 영업 중인 카페 운영자를 신청받아 선정했다. 이번 교육은 지역 농특산물인 천일염과 땅콩을 활용하고 퍼플색을 입힌 디저트 3종 메뉴를 기술 전수하는 과정으로 농산물가공센터 교육장에서 총 2회에 걸쳐 진행됐다. 이번 교육에 참가 업체들은 신안 명품 천일염을 활용하여 특색있는 퍼플빵 가공에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기초·심화 과정으로 반복된 실습을 통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어 큰 호응을 보였다. 신안군 관계자는 "이번 퍼플디저트 교육으로 신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맛을 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지역색을 입힌 특화빵을 개발하여 퍼플섬에 걸맞는 매력적인 퍼플 디저트로 가공 상품화 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안군, 찾아가는 금연 클리닉
신안군이 담배 연기 없는 청정 신안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3일 신안군에 따르면 흡연율 감소와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를 예방하고 군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찾아가는 금연 클리닉 운영 ∙금연환경 조성 및 금연교육․홍보 ∙금연구역 지도․점검 등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찾아가는 금연 클리닉은 보건소 방문이 어려운 금연 희망자를 직접 찾아가 주기적 금연 상담과 보조제를 지원하고 추가적인 비대면 전화 상담 서비스까지 제공해 금연 참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호평이다. 간접흡연으로인한 피해를 방지하고 영유아 건강 보호를 위해 직영 어린이집 5개소에 태양광 금연 표지판 설치를 추진하고 올 하반기에는 유치원․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유아흡연 예방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보건소 관계자는 "올해로 35회째인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담배 연기 없는 청정신안 만들기에 주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해 주기를 당부한다"며 "건강하고 깨끗한 금연 환경 조성과 군민의 건강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8일에는 세계 금연의 날(5월31일)을 앞두고 지도읍에서 흡연의 폐해와 간접흡연의 피해 예방, 금연의 중요성을 알리는 홍보품과 리플릿을 배부하는 등 금연 홍보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교통 인프라 개선' 신안군, 퍼플섬 우회도로 개통
신안군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안좌 반월·박지도 '퍼플섬'의 교통체증 해소와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우회도로를 조성하고 지난 11일 정식 개통했다고 23일 밝혔다. 퍼플섬은 색채를 이용한 컬러 마케팅으로 독특한 퍼플섬만의 차별화 관광전략이 홍콩, 독일, 미국 등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지난 2021년 12월 스페인에서 개최한 세계 75개국 174개 마을 중 유엔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되는 등 명실공히 글로벌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군은 총 사업비 21억원을 투입, 도로 연장 2.0㎞, 폭 4.0~6.0m 대형버스 정차 구간 5개소를 조성했다. Led 보행등 45개와 지주식 가로등 2개소, 해안도로를 따라 보라색 배롱나무(자금령) 3만2000주를 식재해 사계절 꽃피는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만끽할 수 있게 됐다. 매주마다 관광객이 3000~5000명까지 퍼플섬을 방문하면서 밀려드는 차량이 원활히 통과될 수 있도록 우회도로를 조성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의 교통 불편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안군은 "이번에 개통된 우회도로를 통해 지역주민과 관광객에게 편안한 휴식과 기쁨을 주는 힐링도로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세계에서 인정한 최고의 관광명소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속적 관광 도약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말했다.
신안군,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마련
신안군은 취업 취약계층인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 기회 제공을 위해 신규 사업 전남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을 5~11월(7개월간) 추진한다고 19일 밝혔다. 신안군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는 중증장애인들의 장애 유형과 특성을 고려해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활동, 인식개선 활동 등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을 해소하고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 기회 제공과 자립할 수 있는 사회 기반 조성을 위한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을 추진한다. 일자리 참여자 5명은 주 15시간, 월 79시간 근무하게 되며 급여는 시급 9160원을 적용해 월 72만3640원을 지급받게 된다. 지난 17일 전남도와 신안군은 수행기관에 합동 방문해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자와 관계자를 대상으로 의견을 나누는 간담회를 실시한 바 있다. 신안군 관계자는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 제공을 함으로써 사회적 자립 기반 조성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며 "향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여 사업 운영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신안 농민항쟁 5)1927년 매화도 소작쟁의> 농민 조합원 불꽃 항쟁… '소작료 4할' 끝내 물거품
1920년대 신안군은 항일농민운동의 중심지였다. 1923년 12월 시작된 암태도 소작쟁의는 1924년 8월 '소작료 인하'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후 '소작료 인하' 요구는 지도, 도초도, 자은도, 매화도, 하의도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이 중 매화도는 현 신안군 압해읍 부속섬으로 '리' 단위의 작은 섬이다. 어떤 연유로 이 작은 섬 매화도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났던 것일까. ●일제의 식민정책·섬 인문환경 변화 주목해야 1920년대 현 신안군에서 일어난 소작쟁의는 당시 일제의 '산미증식계획'과 '저미가 정책'을 들 수 있다. 쌀가격이 낮아지자 지주들은 소작료를 올려 재산상 손해를 충당하려 했다. 이는 1920년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최성환 교수(목포대 사학과·도서문화연구원)은 일제의 천일염 정책을 주목했다. 일제강점기 천일염전의 도입과 소금 관영화 정책으로 전통방식인 화염을 통해 소금을 생산했던 신안군의 섬 지역이 배제됐다. 섬사람들은 생활은 어려워졌고 지주들이 소작료를 인상하면서 소작쟁의가 발생했다. 단순한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만이 아니라 섬 내부의 인문환경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토지 매매 과정서 '공동체 붕괴' …대지주 서인섭 등장·목포 이주 후 유지로 활동 이천서씨가 매화도에 입도한 것은 18세기 초 서진방이 매화도 대동마을에 정착하면서다. 대동마을은 매화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는 농사 지을 수 있는 넓은 평야가 자리잡고 있다. 서진방이 정착한 이래 이천서씨는 대동마을에서 '친족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성장했다. 작은 섬이다보니 혈연과 혼인으로 이어진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서치규·서인섭 부자가 대지주로 성장하면서다. 서인섭은 1927년까지 매화도 토지를 적극 매입했다. 매입 대상은 매화도 주민뿐 아니라 친족들도 포함됐다. 서인섭은 토지 매매 과정에서 불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소작인으로 전락한 이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징수했다. 서인섭에 의한 지주 지배체제가 공고해지면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1920년대 초 목포로 이주한 서인섭은 유지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목포부협의회와 목포농담회 활동을 들 수 있다. 목포부협의회는 지금의 목포시의회를 생각하면 된다. 목포농담회는 서남권 대지주들의 친목단체다. 서인섭은 목포 유력 인사, 다도해 지주, 식민권력과 인맥을 쌓아가면서 이후 매화도 소작쟁의를 제압할 수 있는 방안을 터득하게 된다. ●식민권력의 투입·매화도 주민 저항…간부진 체포·소작료 5할 합의 매화도 소작쟁의는 1927년 6월 매화도농민조합이 결성되면서 시작됐다. 서병대가 위원장을, 서병천(서찬술)은 자신의 집을 사무실로 제공했다. 이들은 서인섭과 당숙-당질 사이였다. 매화도농민조합은 지주들에게 '소작료 4할'을 통보했고 서인섭이 거부하자 그에 대한 소작료 불납운동을 단행했다. 매화도 소작쟁의는 서인섭에 의해 무너진 공동체가 다시 강화된 것이기도 했다. 서인섭은 식민권력을 동원해 소작쟁의를 탄압했다. 8월 말 서인섭은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가옥명도 가처분을 진행했다. 본인 소유의 집에 거주하고 있던 소작인들을 끌어내려 했다. 1차 집달리들이 동원됐을 때는 조합원과 농민 200여명이 저항했으나 2차 경찰이 투입되자 가처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0월 추수와 소작료 감정을 앞두고 매화도농민조합은 4할, 서인섭은 5할을 주장하며 다시 대치했다. 11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쿠리야마[栗山兼吉] 검사가 직접 매화도에 입도해 '소작료 5할'을 강요했다. 농민조합은 풍해, 수해를 이유로 5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정을 말했으나 쿠리야마는 26명의 간부들을 구속하고 말았다. 목포에서 구속자 석방투쟁도 이어졌으나 실패로 끝났다. 일본인 인권변호사 후루야(古屋貞雄)의 지원도 있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928년 5월 서인섭과 농민조합은 소작료 5할에 합의하면서 '소작료 4할'을 외쳤던 매화도 소작쟁의를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농사 경영자금 5전을 대부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 할 수 있다. 9월28일 열린 재판에서 서병대, 서병천(서찬술), 박관섭이 징역 1년을 선고 받는 등 간부 26명에 실형 판결이 내려졌다. 소작쟁의 이후 매화도는 어떻게 됐을까. 1933년 건립된 '서치규영세불망비'를 보면 서치규를 찬양하는 문구 일색이다. 1927년 소작쟁의가 실패로 끝나면서 이후 서인섭에 의한 지주화가 확고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존권 투쟁 넘어 식민지 체제 저항으로 매화도 소작쟁의는 조선인 지주가 대상이고 일제에 저항하는 구호가 없다는 점에서 생존권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작쟁의는 단순한 생존권 투쟁이 아니다. 식민지 체제에 편승해 성장한 지주에 대한 저항이었다. 식민권력과 유착한 지주에 대한 저항이었다. 서인섭이 '가옥명도 가처분'과 같은 식민지 법령과 집달리·경찰·검사와 같은 식민권력이 동원되었다는 것이 반증한다. 검사의 동원 이전의 소작쟁의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매화도 소작쟁의는 단순한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거대한 식민권력과 싸운 항일농민운동으로 평가해야 한다. 최근 정부에서는 농민운동도 독립운동이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독립운동가 서훈도 지속되고 있다. 매화도에서는 서병천·조봉홍이 애족장, 서병언·임백춘·서병은·최권순·이만춘·한현채에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그럼에도 아직 추서 받지 못한 이들이 많다. 후손 발굴과 서훈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신안군, 가족사랑 케이크 만들기 이벤트
신안군 가족센터는 다문화가족과 한부모가족 등 200명과 함께 가족사랑의 케이크 만들기를 진행했다고 18일 밝혔다. 읍·면복지관과 다가온에서 이루어진 이 행사는 케이크 전문 강사를 초빙해 생크림과 과일을 활용해 사랑의 마음을 전했다. 김광명 다문화가족협의 회장은 "바쁘게 일만 하던 가족들에게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박향란 가족센터장은 "가족들이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어려운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안군, 찾아가는 경로당 순회진료 재개
신안군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중단했던 무의도서 및 보건진료소 지역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경로당 순회진료'를 4월 말 안좌 자라도를 시작으로 재개했다. 찾아가는 경로당 순회진료는 보건·의료기관이 없거나 멀리떨어져 있어 교통불편으로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의료 취약지역 경로당 등에 의료 전담팀이 방문해 맞춤형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신안군은 무의도서 18개소와 의료취약 지역 44개소를 선정하고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간호사 △행정요원 등으로 진료반을 구성하여 운영 중에 있다. 순회진료팀은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기본적인 검사로 주민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한방 침, 투약, 불소도포, 건강상담 등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국가건강검진 안내, 심뇌혈관 질환예방 및 낙상예방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신안군 관계자는 "찾아가는 경로당 순회진료 사업을 더욱 내실있게 추진해 의료취약계층의 소외감 해소는 물론 '군민이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안군, 중대재해 예방 전직원 직무교육
신안군은 지난 16일 전직원을 대상으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직무교육을 실시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교육은 중대재해처벌법지난 1월 시행됐으나 법 시행 초기로 관계 법령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혼선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종사자와 군민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관계 법령 의무이행 상항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강의는 유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전남지역본부 경영총괄부장이 산업재해 발생 현황,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주요 내용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주요 의무사항, 산업안전보건법 비교 등의 내용으로 심층 깊게 교육을 진행했다. 이번 교육을 통해 신안군 전직원들의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확고한 안전의식과 적극적인 의무이행으로 중대재해 없는 안전한 신안군 달성에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안군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이해하고 종사자와 군민들의 안전을 위한 선제적인 대처와 예방중심 관리체계 구축으로 중대재해 발생 제로화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신안군, 올 첫 생산 천일염 80만 포대·144억 판매
신안군은 올해 첫 생산된 천일염이 남신안·북신안·비금·도초농협 등을 통해 1만8000원(포장전 알맹이 20㎏기준)에 거래되며 80만 포대를 판매, 144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16일 밝혔다. 전국 천일염 생산량 88%를 차지하는 신안천일염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서해안 갯벌에서 생산되어 미네랄과 철분, 칼슘 등이 함유된 명품 천일염이다. 김치, 된장 등 전통 발효음식에 필요한 조미료다. 작년 한 해 신안천일염 가격은 최고 2만2000원(포장전 알맹이 20㎏ 기준)에 거래됐으며 올해는 1만8000원에 첫 거래가 이뤄졌다. 생산 시작 후 약 한 달 만에 80만 개가 판매되는 등 앞으로의 천일염 생산량과 가격변화에 귀추가 주목된다. 신안군 천일염 생산관계자는 "현재 일조량도 좋아 소금생산이 원활하다"며 "어업인들이 고품질의 천일염을 생산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안군은 지난해 전국 소금밭 면적의 71%인 2593㏊규모인 773 생산 어가에서 23만4000톤의 천일염을 생산해 163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해풍맞은 신안 양배추, 대만 첫 수출길 올랐다
신안군에서 생산되는 양상추 등 양채류가 대만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른다. 신안군은 지난 11일 양채류 작목반에서 생산한 양상추 240톤, 적채류 5종 1000톤 전량에 대해 첫 수출을 위한 선적식을 가졌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수출은 3개월(6월~8월)을 제외하고 내년 3월까지 연중 출하되며, 35농가가 참여하여 수출대행업체와 계약재배를 통한 연간 7억의 농가소득이 예상된다. 청정해역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양상추·적채·로메인·브로콜리·알베기배추 등 품목 다변화로 농가에 높은 수익원으로 기대하며, 이기작(봄·가을)을 할 수 있으며 수급불안 품목 대비 3~4배의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재배농가들은 '지도읍 양채류 작목 연구회'를 만들어 기술교류는 물론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시장 환경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며 새로운 소득 작목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순석 친환경농업과장은 "양채류 생산에 안정적인 재배환경과 수출물량 확대 등 농가의 소득증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왕새우 메카' 신안군, 왕새우 종자 입식 한창
신안군은 2년 연속 600억원의 왕새우 생산고를 달성한 가운데 본격적인 새우양식 시기를 맞아 지난 4월 말부터 종자 입식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군은 올해 저수온 현상으로 예년 입식시기에 비해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종자입식 적정 수온(17도 이상)이 유지됨에 따라 오는 15일부터 25일까지 입식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우종자 입식량은 전년도와 비슷하게 6억마리 이상의 종자입식이 예상되며 자연폐사율(30~50%) 등을 감안하더라도 생산량은 대략 6000여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새우양식은 입식을 시작으로 4~5개월의 양식기간을 거쳐 1㎏당 약 30~40마리(1마리당 25g~30g)까지 키워 출하시키는 최단기간의 고소득 양식품종이다. 지역민은 물론 귀어를 희망하고 있는 어업인들에게 크게 각광 받고 있다. 신안군 관계자는 "최근 2년간 장기적인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왕새우 소비 침체로 가격이 현저히 낮게 형성되어, 양식어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완화되어 감에 따라 올해에는 왕새우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소비촉진에 기여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신안군 양식새우 생산은 지난해 기준 284어가, 363개소(938㏊)에서 4500여톤(600억원)을 생산, 전국 생산량의 52%(전남의 81%)를 차지하고 있다.
박우량, 민주당 신안군수 후보 최종 확정
박우량 신안군수 예비후보가 6·1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11일 민주당 전남도당에 따르면 이날 중앙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박 예비후보에 대한 공천 적격성을 검토해 신안군수 후보 자격을 유지키로 결정했다. 박 예비후보는 지난달 30일 민주당 신안군수 후보로 선정됐으나 지난 3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으면서 공천에 대한 재논의가 진행됐다. 민주당은 박 예비후보의 혐의가 공천기준으로 정한 7대 비리와 관련이 없고, 형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안군, 청정해역 바다숲 조성 속도
신안군은 지난 5월초 갯녹음 확산에 .따른 사라진 해조류 복원을 위해 비금면 노대도와 안좌면 상사치도 암반 해역에 바다정원화사업 일환으로 해조류(곰피)를 이식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이식한 곰피는 다년생 갈조류과로 여름철 고수온기에도 엽상체를 유지하며 연중 생장하여 바다숲 조성의 주요 해조자원이다. 곰피 서식에 적합한 수심 2~5m의 암반지역에 곰피 엽장(5㎝이상)이 엮인 친환경 줄 1만6554m를 황토 벽돌 2672개에 결속, 투하하는 방식으로 추진했다. 이번 해조류 이식 해역은 2022년부터 5년간 50억원을 투입, 인공어초 투하 등을 추진하는 쥐노래미 산란·서식장 조성 인접 해역으로 향후 낚시산업의 거점지역으로 육성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은 지금까지 갯녹음 예방과 연안 생태계 복원을 위해 흑산도해역에 다시마 3만m, 비금도, 암태도, 안좌도해역에 곰피 5만8000m를 이식을 완료한 바 있다. 현재 군은 지난해에 이식한 해조류(곰피)의 포자 발아를 통한 주변 암반 착생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바다숲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안 농민항쟁 4)자은도 소작쟁의> 일제항쟁·해방 후 좌우대립·6·25… 갈등 치유 혼신
신안 자은도(慈恩島)는 목포에서 서북쪽 해상 41.3㎞에 위치해 있다. 백길해수욕장을 비롯해 9개의 해수욕장이 있는 휴양지다. 해안 풍경과 낙조가 멋드러진 해넘이 길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1004섬 뮤지엄파크 등 볼거리들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목숨을 건진 명나라 장수가 섬의 자비로움과 은혜에 감탄했다고 해서 자은도라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자은도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이기도 하다. 해방 전후 좌우 이념 갈등이 심했고 한국전쟁기간 민간인 학살이 폭발했다. 전쟁 초기 좌익이 자은도를 장악한 이른바 '붉은 3개월' 동안 벌어진 우익 학살, 좌익에 대한 보복 학살로 2000여 명이 희생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20년대 자은도 소작쟁의는 이러한 갈등의 뿌리이자 화해의 시작이다. ●자은도 소작쟁의 전개 양상 자은도 소작쟁의는 암태도 소작쟁의 영향을 받았다. 암태도 소작인들은 1924년 8월 논농사에서 수확량 대비 소작료의 비율을 40%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자은소작인회도 자은도 지주들에게 같은 조건을 요구 했으며 1924년 10월 원만히 합의했다. 소작료율은 논 40%, 밭 30%, 추가로 10%를 농업장려비로 두고 필요할 때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자은도 핵심 지주인 문재철, 천철호, 나카지마 세이타로(中島淸太郞) 등은 농업장려비를 교부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925년 8월 신안군 각 섬 지주들은 다도농담회(多島農談會)를 구성한 후 50% 소작료율을 제시하면서 기존 합의를 파기했다. 이것이 1925~26년 신안군 섬에서 농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작쟁의를 벌인 이유다. 1925년 11월 자은소작인회도 40% 소작료율을 받아들인 지주에는 소작료를 지불했지만 거절한 지주에게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불하지 않는다고 결의했다. 대신 거절한 지주들의 몫은 지정된 장소에 모아둔 후 가져가라고 통지했다. 그러나 지주들은 소작인의 재산을 가압류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12월24일 새벽 집행관은 다도농담회 사무원과 마름을 앞세워 소작인 집에 있는 벼와 곶감 1자루까지 남김없이 가압류하고 소작인의 지장까지 위조했다. 분노한 자은도민은 곤봉과 횃불을 들고 수백여 명이 모여 집행관을 쫓아냈다. 그러자 가압류 과정에 경찰이 가담했다. 1926년 1월 초 전남 경찰부는 전남 각지의 경찰들을 비상 소집(180명 또는 270명이라고도 함)해 자은도에 파견했다. 경찰들을 저지하려다 충돌한 농민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약 40명이 검거됐다. 이 와중에도 집행관은 4조로 나눠 경찰 30명을 대동하고 가압류를 집행했다. 자은도에 파견된 경찰들이 섬의 교통과 통신을 차단했기 때문에 소작쟁의 상황이 곧바로 외부로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목포와 서울의 사회단체가 자은도에 연대의 손길을 뻗었고 일본의 유명한 사회주의자가 응원차 몰래 자은도에 들어와 잠복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경찰이 중재에 나섰다. 그 결과 1926년 1월 자은도 지주와 소작인 대표가 협정을 체결했다. 논농사 수확량을 5:5로 나눠가지되 지주는 자기 몫의 10%를 다시 소작인에 농업장려비로 교부한 다는 것이 핵심이다. 암태도 소작쟁의에서 확보한 40%가 아닌 지주들이 내세운 50%를 소작료율로 정한 것이지만 농업장려비까지 계산하면 최종 소작료율은 45%로 절충됐다. 이로써 자은도 소작쟁의는 일단 막을 내렸다. ●소작쟁의 항일운동 성격과 사회주의자 '낙인' 자은도민이 경찰과 충돌하면서까지 소작쟁의에 참여한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소작인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소작인은 고율의 소작료뿐 아니라 지주가 책임져야 할 농사 개량 비용까지 부담했다. 마름은 수확량을 자의적으로 결정해 소작료 양을 늘리고 소작인의 소작권을 좌지우지 했다. 자은소작인회는 행동을 고치지 않는 악덕 마름은 생활권에서 축출하겠다고 경고하는 한편 주민들에게도 쟁의에 나오지 않으면 마을에서 쫓아내겠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섬 주민들의 생활공동체 의식도 소작쟁의 확산의 배경이었다. 소작쟁의는 항일운동의 성격도 지녔다. 자은소작인회장 표성천은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 목포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서울에서 장병준에게 태극기와 경고문을 받아와서 암태소작회장이 되는 서태석에 전달했다. 장병준과 서태석이 대한민국 애국장에 서훈됐음에 비춰볼 때 표성천도 항일 민족의식을 가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표성천은 징역 1년에 처해졌고 자은도 소작쟁의 때는 5년 이내에 재범행했다는 이유로 가중 처벌돼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았다. 소작쟁의 참가자 중 가장 높은 형량이었다. 그러나 지주들은 소작쟁의 주도자를 사회주의자로 몰았다. 일본은 1925년 사회주의 운동 및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제정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소작인회가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주의를 고취하니 엄중 단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은소작인회 간부 성향과 활동상으로 봤을 때 이는 분명한 모함이었다. 그렇지만 식민권력은 자은도 소작쟁의가 조선 안팎의 사회주의자와 연결되는 것을 경계 했으며 지주회의 편에 서서 쟁의를 진압하기 위한 수단을 동원했다. 지주의 가압류 신청, 소작인의 저항에 대한 식민권력의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은 지주와 식민권력의 결탁을 보여주는 제도였다. 소작쟁의가 그에 저항하다 탄압받았다는 사실이야말로 항일운동의 일종이었음을 말해준다. ●2000년 현충탑 세워…좌우대립 상처 극복해가길 현재 자은중학교 앞에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2000년 건립 당시 안내판이 없었는데 자은도민들은 화해를 위해 이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안내판에 "한국전쟁과 월남전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지역 어르신들의 위대한 헌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세웠다고 나와 있다. 국가보훈처는 신안군 소작쟁의를 국내항일운동으로 인정, 지난해 자은도 소작쟁의에 참여한 김진운(애족장), 표생규, 양봉이, 양석암, 우판도, 성낙표(이상 대통령표창) 등을 국가유공자로 서훈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우익 세력과 좌익으로 몰렸던 소작쟁의 주도층이 동시에 기념된 셈이다. 아쉽게도 서로 죽고 죽이던 한국전쟁기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좌우 대립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일은 모든 한국인이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그 과정에서 일제시기 농민의 생존권 투쟁과 사회주의 운동도 항일운동의 하나였다는 점, 일상과 운동을 오가던 일반 주민들의 삶에 생활공동체 의식이 관통했다는 점이 화해의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신안군, 이동세탁 빨래방지원·노인돌봄 사업 등 찾아가는 복지행정 '눈길'
신안군이 취약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복지행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취약계층과 경로당을 대상으로 하는 이동세탁 빨래방서비스와 맞춤드림형 지역특화사업, 의료사각지대 해소, 에너지효율개선사업 등이 그것. 신안군은 취약계층의 생활불편 해소와 위생적인 생활을 할 수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신안형 통합돌봄체계 구축…도시자녀들 호응 신안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매년 14개 전 읍면 취약계층 및 경로당을 대상으로 이동세탁 빨래방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이동세탁차량(2.5톤) 2대, 고정식 빨래방 2개소를 설치·운영하고 있으나 수요가 많은데다 작은차량을 운영한 관계로 서비스의 한계에 봉착했다.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모사업을 통해 1억2000만원,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1억원을 모금해총 2억2000만원으로 5톤 세탁차량을 구입할 예정이다. 이동세탁빨래방지원사업은 취약계층 생활불편 해소와 위생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노인돌봄 부재에 따른 지역별 특화사업도 눈길을 끈다. 지도읍은 지난해부터 신안군과 ㈜1004섬지도읍배관망간 MOU를 체결하고 취약계층 안전돌봄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비대면 스마트기술을 공유해 지도읍 취약계층 가스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장기간 미사용 가구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타지역 자녀들로부터 에게 걱정을 덜어주고 있어 호응받고 있는 사업이다. 임자면은 행안부 공모사업 'ICT기반 1004섬 생활밀착 돌봄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65세이상 치매, 중장애인, 중증질환자 등 100여명에 케어장비(호흡 및 움직임 감지, 긴급호출, 장보기 등)를 보급해 안전 돌봄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암태면은 KT와의 협약을 통해 ICT기반 암태기동 스마트경로당 및 스마트 돌봄서비스를 구축, AI 돌봄로봇 다솜이를 통해 독거노인에 대한 건강체크 및 안부확인 서비스를 실시간 제공하고 있다. ●신안군복지재단, 효자복지재단 거듭나다. 신안군복지재단은 신안군 지역 특수성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08년 설립됐다. 관 중심의 복지서비스 지원의 한계를 보완하며 복지시설·관내 저소득층을 위한 소통역할을 해오며 분야별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지원기준초과로 사각지대 놓인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긴급지원사업 △재난·지해 세대의 위기상황에 대해 다각적인 지원을 위한 응급재난지원 △지역내 다양한 재능기부봉사활동을 연계지원하는 재능봉사단운영 등을 수행하며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후원물품 10억원, 후원금 1억7000만원을 기부받아 효자복지재단으로 거듭나고 있다. ●맞춤드림형 지역특화사업 추진 일상생활에서부터 불편함이 많은 취약 계층에게 방문상담을 통한 맞춤드림형 지역특화사업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3억1900만원을 편성해 생활환경을 개선하는데 지원해주고 있따. 지난 2020년부터 추진 중인 맞춤드림형 지역특화사업은 지난해 말 기준 2900가구에 11억원을 지원하며 호응을 얻고 있는 사업이다. 스위치와 리모콘을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등교체지원사업, 비위생적인 좌변기, 샤워기, 방충망 교체지원사업 등 주거개선 사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복지사와 방문간호사의 방문상담을 통해 발굴된 대상자의 생활불편사항을 협의체 위원 및 복지기동대원들과 함께 신속하게 해결하고 있다. 원스톱 복지서비스도 관심을 받고 있다. 복지멤버쉽을 활용해 임신과 출산, 65세 도래 노인, 주거취약 장애인 등 수요자 특성에 맞는 통합적 복지 서비스를 1회신청으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신안군은 수요자 중심의 복지행정을 적극 구현할 계획이다.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에너지효율개선사업 성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가입자 중 월 건강보험료 부과금액이 8220원 이하인 노인가구 1020세대에 국민건강보험료를 지원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통보받은 보험료 부과 관련 자료를 토대로 확정하며 매월 보험료 납부 마감일 전 보험료 총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일괄 지원하고 있다.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고,저소득층의 건강증진 및 복지향상에 기여 할 것으로 기대한다.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도 눈여겨 볼 사업이다. 저소득층에 난방시공(단열·창호·바닥공사·보일러 교체) 및 냉방기기(벽걸이형 에어컨 또는 선풍기)를 지원해 에너지 사용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지원 대상은 국민기초생활수급가구와 차상위계층, 일반 복지사각지대 저소득가구가 해당되며 주거급여 자가 집수리 대상가구는 제외된다. 신안군은 2018년부터 한국에너지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매년 2018년 8억원, 2019년 6억원, 2020년 6억원, 2021년 6억원 등 사업비를 투입하고 있으며 올해도 200세대에 순차적으로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지역별 현안사업 중심으로 군민들의 살기 좋은 섬 복지정책을 펼치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안군 장산면에 '장산화이트뮤지엄' 개관
신안군이 11일 장산면 팽진리 옛 장산동분교장을 리모델링을 해 장산화이트뮤지엄으로 개관한다. 장산출신 예술가 3인의 작품과 다양한 콜렉션 작품이 선보인다. 장산화이트뮤지엄은 1962년 개교해 2008년 문을 닫은 장산 동분교장으로 대지 면적 1만9319㎡(5854평) 건축면적 1268㎡(384평)이며 한때 1000명의 학생들이 재학하던 학교였다. 신안군은 지난 2018년 학교부지를 매입해 두 동의 건물 14개 교실에 전시공간, 교육 및 커뮤니티공간, 수장고를 갖췄다. 교사숙소로 사용하던 부속건물 2개 동은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레지던스를 갖춰 예술가들이 장산도 주민을 위한 교육과 창작을 병행할 수 있도록 했다. 장산화이트뮤지엄 개관 전시 '장산에 살어리랐다'에는 총 114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장산 출신 예술가 3인(한국화가 청호 김동신·서예가 죽전 송홍범·서양화가 정창경)의 작품 101점과 목포에서 인쇄사업을 하면서 지역예술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애호가 죽림선생의 콜렉션이 특별 초대된다. 박생광, 오승우, 김영자 등 10인의 작가작품 13점도 만날 수 있다. 장산면은 독립운동가 장병준 선생을 비롯해 9명의 장관 등 인재를 배출한 곳이다. 장산도는 이번 전시에 초대된 3인의 예술가를 배출했으며 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미술관을 개관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3인의 예술가가 한국화, 서예, 서양회로 각각 다른 장르인 점도 독특하다. 3인의 예술가 중 1945년생인 청호 김동신 선생은 만년에 고향 장산도 오음리로 돌아와 창작에 몰두했다. 청호선생의 장산면 후배의 노력으로 유작 대다수가 장산화이트미술관에 기증됐다. 서양화가 정찬경 작가도 신안군에 작품을 기증하며 장산화이트미술관 개관에 기여했으며 서예가 죽전 송홍범 선생 역시 개관전에 대표작 10폭 병풍 '천지창조'를 출품하며 신안군에 기증의사를 밝혔다. 인근 초·중학교는 장산화이트미술관을 적극 활용할 계획으로 벌써부터 기대감이 높다. 학생들의 예술적 소양과 학부모들을 위한 교육을 병행할 예정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개관하는 장산화이트뮤지엄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수준 높은 예술의 향기를 전할 예정이며 '1도 1뮤지움 정책'을 적극 추진해 가겠다"고 말했다.
신안 반월·박지도 할머니들 "BTS 오빠들~ '퍼플섬'으로 놀러오쇼잉~"
'퍼플섬'으로 유명한 신안군 반월·박지도의 할머니들이 출연해 세계적인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초대하는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분 가량의 영상은 보랏빛으로 섬을 가꿔 유엔세계관광기구 세계최우수관광마을로 선정된 퍼플섬을 소개하고 할머니들이 방탄소년단(BTS)을 초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구 120명에 불과한 퍼플섬 반월도·박지도는 세계 75개국 174개 마을이 진출한 본선에서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처음으로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Best Tourism Village)'로 선정됐다. 주민들은 쇠락해가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신안군과 손잡고 마을을 보랏빛으로 채색했다. 보랏빛 국화, 보랏빛 다리, 보랏빛 지붕, 보랏빛 전기차 등 반월도와 박지도는 퍼플섬으로 변했으며 2019년부터 2021년 12월 말 기준 77만5000명의 여행객이 다녀가는 세계적 명소가 됐다. 지난해 12월23일 퍼플섬에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의 27년째 생일(12월30일)을 기념해 뷔가 만들어낸 유행어 'I PURPLE YOU(보라해)' 포토존을 설치해 아미(BTS팬클럽)들의 주목을 받았다. 유튜브 영상은 두달여 동안 조회수 8만을 넘겼으며 신안군 공식 유튜브 채널(1004섬 신안)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박지도 정승필 이장은 "퍼플섬 할머니들이 BTS를 너무 보고 싶어 하신다"면서 "보라색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BTS가 퍼플섬에 오면 큰 경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안군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예전에는 BTS를 잘 몰랐지만 언론과 방송에서 자주 이야기하고 아미(BTS팬클럽)들이 퍼플섬에 놀러와 인증샷을 많이 남기고 있어 이제는 BTS를 많이 아신다"며 "'I PURPLE YOU(보라해)'로 세계적인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는 BTS가 퍼플섬에 오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