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백운마을에서 공공근로를 마친 어르신들이 마을길을 따라 걷고 있다. 윤준명 기자 |
10일 찾은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백운마을에서는 불과 일주일 전에 끝난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마을회관이나 그늘 쉼터에 정겹게 모여 앉은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선거 결과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았다.
백운마을은 인구 71명의 산속 농촌 마을로, 총 959명에 불과한 청풍면에서도 한적한 편에 속한다. 이는 요양원에 입원한 어르신이나 주소지만 두고 타지에서 생활하는 주민들까지 포함한 숫자로, 실제 마을에 머무는 인구는 60여명 남짓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마을 어귀 어디에도 후보자를 알리는 벽보 한 장 붙지 않았다. 면 단위 기준 인구 100명당 하나가 붙는 홍보 벽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자체적으로 내건 현수막도 이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도심이 선거 열기로 분주했던 시기에도, 이 마을에는 그저 산골의 적막함만이 이어졌을 뿐이다.
김진홍(61) 이장은 “흔히 볼 수 있는 선거 벽보나 현수막도 없었고, 유세 차량도 드물게 지나갔다. 여기는 선거때도 조용한 편이다”며 “호남 지역 특성상 표심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보니 운동원들도 굳이 우리 마을처럼 외곽 산촌까지 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연히 들른 백운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에 반해 정착한 김 이장은 광주광역시에서 은퇴 후 내려온 지 10년째다. 도시 기준으로는 ‘시니어’지만, 이곳에서는 ‘젊은 일꾼’으로 통한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세대인 50대도 고작 5명에 불과하고, 60대 역시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주민들은 대부분 70~80대 이상 고령층이다. 수십년 전만 해도 아이들과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마을을 왁자지껄하게 채웠지만, 지금은 추억이 된 지 오래다.
![]() 10일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백운마을의 유일한 정류장에 어르신들의 버스 대기를 위한 의자가 놓여있다. 윤준명 기자 |
한귀현(78) 할아버지는 “청풍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동네 친구끼리 여럿 모여 학교에 다녔다”며 “당시만 해도 젊은 어른도 많아서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마트도 있었는데, 사라진 지도 한참됐다”고 회상했다.
유일했던 마트가 문을 닫은 뒤로 백운마을에는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상점이 사라졌다. 간단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는 면 소재지나 인근 이양면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고, 장을 보려면 30여분 거리의 화순읍까지 나가야 한다.
의료 시설도 마찬가지다. 면 내에 보건지소가 하나 있지만 기본적인 처치만 가능한 수준이라, 주민들은 병이 나면 참고 버티다가 ‘큰맘 먹고’ 하루 시간을 들여 광주의 병원을 찾는다. 이들의 발이 돼 주는 농어촌 버스도 하루 네 차례뿐이다. 오전 2대, 오후 2대가 마을을 지난다.
오영근(69) 할아버지는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려면 가장 가까운 술집이 있는 이양면까지 나가야 한다”며 “당뇨와 고혈압 약을 타러 광주에 있는 큰 병원에 자주 오가야 하는데, 버스편도 적고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마을의 소멸 속도도 가파르다. 지난 2021년 말 기준 85명이던 주민등록 인구는 3년 반 만에 14명 줄었다. 곳곳에 빈집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당에는 잡초만이 무성해 한때 산기슭까지 집을 짓고 살았다는 어르신들의 증언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이대로 가면 10~20년 사이 마을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주민들의 우려가 모이는 까닭이다.
비록 열띤 선거 분위기는 없었지만, 주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바람만큼은 결코 어느 지역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21살에 가마 타고 시집와 어느덧 백운마을의 터줏대감이 된 염복남(85) 할머니의 소원은 마을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젊은 양반들이 내려와서 짝 만나고 가정 꾸리면서 살 수 있는 세상 좀 만들어줘야제. 먹고살 일도 좀 있어야 외지 사람들도 올 거 아니요. 나도 여그 시집와서 평생 살아왔는디, 이렇게 동네가 사라지믄 참 아깝고 속상허지 않겄소?”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