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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관객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 독립영화 ‘워낭소리’속 명대사다. 땔감을 짊어지고 함께 고개를 오르는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를 한 프레임에 잡은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추운 겨울 소는 마지막 기력을 다해 노 부부에게 준 ‘최후의 선물’이었다. 숨을 거두기 전 할아버지는 소를 평생 옥죄었을 고뚜레와 워낭을 풀어준다. 워낭소리는 30년 넘게 오랜 파트너였던 사람과 소의 교감이 주는 진한 감동을 준 영화다. ‘워낭소리’의 영어 제목은 ‘오랜 동반자(Old Partner)’다.
우리나라는 소에 매우 각별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소는 현재의 농기계를 대신해 준 든든한 일꾼이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농촌지역에선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는 밑천이 됐다. 소에 대한 한국인의 각별한 애정은 개화기 우리나라를 찾은 한 외국인에게도 특별하게 비춰졌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여류작가인 펄벅은 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시골길에서 짚단을 실은 달구지를 모는 농부가 짚단을 가득 얹은 지게를 짊어지고 소와 같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한국인의 심성을 봤다”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집에서 키우는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생명 작가로 유명한 최수연은 ‘소-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에서 “생구는 원래 한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사는 하인이나 종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소도 그렇게 불렀다”라고 적고 있다. 목축업이 번성한 제주도는 새해에 맞는 첫 소의 날(축일(丑日)·제주도 사투리로 ‘첫쉣날’), 소의 건강과 무병을 빌었다. 아직도 이런 풍습은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송아지가 기록돼 있다. ‘태조실록’에 나오는 강릉 부사를 지낸 이엽의 집에 사는 소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이다. 두 송아지 탄생이 ‘국가적 경사’로 실록에 실릴 만큼 중대사였다는 얘기다.
소가 오랜 동반자라는 인식 속에 해남 축사에서 소 63마리가 ‘의문의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더욱 기가막힌 건 소가 굶어죽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찰은 폐사원인을 조사중이라고 한다. 축사 소유주는 “바빠서 관리를 못했다”는 진술까지 나왔다. 동물을 굶주림에 방치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명백한 학대행위다. 이젠 소는 더이상 동반자가 아니다. 그저 고기용으로 취급된다. 소의 수명은 15∼20년이지만 좋은 등급을 받으려고 수소는 거세하고 30개월, 늦어도 36개월이면 도축한다. 외양간은 축사로,여물은 사료로 대체됐다. 그저 비싸게 팔리는 상품에 불과하다. 이젠 영화 워낭소리처럼 자연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소의 죽음’이라는 존엄의 가치 마저 상실해 버린 현실이 그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