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놓친 배움의 꿈 이뤄 감개무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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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어린 시절 놓친 배움의 꿈 이뤄 감개무량"
●목포제일정보중·고 졸업식 가보니
졸업 186명·대학합격 73명 배출
자녀·사위·손자 등 축하객 '운집'
후배-선배 간 송별·답사에 눈물
'여고졸업반'…지난날 설움 털어
"삶의 지혜 배워…새출발 응원해"
  • 입력 : 2025. 02.17(월) 18:47
  •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
지난 15일 제37회 졸업식이 열린 목포 산정동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교사와 졸업생, 지인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국민학교 졸업 이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배움을 이어가지 못했어요. 70여년만에 마음 한구석에 간직했던 오랜 소원을 이뤘습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네요.”

지난 15일 목포 산정동 평생교육시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 만난 최고령 중학교 졸업자 최왕길(87)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졸업장을 매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치매 등 노환을 앓는 아내를 보살피며, 지역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뒤늦게 책가방을 다시 멘 최 할아버지는 앞으로 고등학교 2년, 전문대 2년을 거쳐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 할아버지는 “매일 진도에서 목포까지 버스를 6번 갈아타며 통학했다. 2년간 급우들과 담임교사의 많은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 빛나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며 “하늘이 허락한다면 91살에는 사회복지사가 돼 많은 노인의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열린 졸업식에는 최 할아버지를 비롯해 초등과정 20명, 중등과정 63명, 고등과정 103명 등 총 186명의 졸업생이 자리를 함께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는 이른 아침부터 졸업생들과 이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가족과 지인들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졸업을 맞아 마지막 등굣길에 나선 장노년 학생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학교의 특성상 재학생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어서면서 자녀나 며느리, 사위, 손자들이 졸업생들에게 졸업 축하 꽃다발을 건네는 이색적인 장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장홍창(50)씨는 “장모님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목포를 찾았다. 노년기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시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꾸준히 노력해 꿈을 이루시는 모습에 가족 모두가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열렬히 응원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목포 산정동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 열린 제37회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가 김혜진 교장으로부터 졸업증서를 수여받았다. 윤준명 기자
졸업식에서는 후배들이 교정을 떠나는 선배들의 밝고 행복한 앞날을 기원하기 위해 준비한 노래를 불러 의미를 더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진심 어린 응원에 감동하며,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을 되새기면서 촉촉해진 눈가를 연신 닦아냈다.

김원범(62) 학생회장은 “뒤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 선배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고, 함께한 시간 속에서 끈끈한 연을 맺었다”면서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인 선배들께 깊은 존경을 표하며,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졸업생 대표 김모(61)씨는 “다시 학교에 돌아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로 기억될 것”이라면서 “어디에 있든 제일정보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큰 자랑으로 생각하겠다. 모두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며 눈물로 화답했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졸업생이 고교 과정 진급과 대학 진학 의사를 밝히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올해 4년제 대학 합격자 13명, 2년제 대학 합격자 60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목포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에 진학 예정인 박정란(67)씨는 “퇴직 후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싶어 학교에 다니게 됐고, 레저스포츠 분야에서 어르신들에게 재능 기부를 하고자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며 “입학을 준비하며 수학과 영어 공부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배움을 즐기며 도전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릴 적부터 꿈꿨던 대학 캠퍼스 생활에 대한 기대가 크다. 처음에는 뒤늦게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배움에는 때가 없고 배우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더라”며 “더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 배움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제37회 졸업식이 열린 목포 산정동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 3학년1반 담임교사 서은희씨와 졸업생이 포옹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 윤준명 기자
졸업식을 마친 뒤 학생들은 각 교실로 돌아가 담임교사, 급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거나 그동안의 추억을 회자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3학년 여학생 교실에서는 ‘여고졸업반’ 노래가 흘러나왔고, 학생들은 한 구절 한 구절 따라 부르며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배우지 못했던 지난날의 응어리진 설움을 훌훌 털어냈다. 담임교사와 학교장은 마지막 종례를 통해 졸업생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며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3학년1반 담임을 맡고 있는 서은희(50) 교사는 “정든 학생들을 떠나보낼 생각을 하니 시원섭섭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했을 뿐,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더 많은 삶의 지혜를 배웠다”며 “학생들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언제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혜진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장은 “비록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수많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한 학생들의 앞날에 영광만이 있기를 기원한다”면서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더불어 살기 위해 힘쓰는 목포제일정보인이 돼달라”며 힘찬 응원을 보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