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쒀먹기도 무서워”… 정월대보름 식재룟값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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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팥죽 쒀먹기도 무서워”… 정월대보름 식재룟값 급등
이상기후로 오곡밥·부럼 가격 인상
특수 실종에 전통시장 상인들 시름
서민들, 가격부담에 수입산 구매도
“악천후에 작황부진 이어질까 우려”
  • 입력 : 2025. 02.11(화) 18:01
  • 나다운 기자 dawoon.na@jnilbo.com
한국물가정보 홈페이지 캡처
설·추석 등과 함께 5대 명절로 꼽히는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이상기후로 인해 오곡밥·부럼 재료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광주 동구 대인시장에서 한 지역민이 오곡밥 재료를 구매하고 있는 모습.
“작년 김장철에는 배춧값이, 지난 설 명절에는 차례상 음식 가격이 오르더니 이번 대보름에는 오곡밥 재료·부럼 가격이 크게 올랐네요.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대목에도 특수를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설·추석 등과 함께 5대 명절로 꼽히는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이상기후로 인해 오곡밥·부럼 재료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치솟는 먹거리 물가로 인해 김장철이나 명절 같은 대목에도 전통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 제대로 된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찾은 광주 동구 대인시장. 이곳에서 쌀 상회를 운영하는 양향님(72)씨는 예년에 비해 부쩍 오른 오곡밥 재료 가격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대보름을 쇠는 사람들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와중에 팥·찹쌀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그나마 명절을 준비하던 사람들도 전통 음식 마련을 포기하거나 구입량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을 선택하는 등의 방안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양씨는 “예전에는 대보름이 다가오면 고객들이 줄을 서서 오곡밥 재료를 사 가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보름을 쇠는 사람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이상기후에 작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급등해 그나마 재료를 사 가던 사람들의 발길도 끊기면서 장사하기가 정말 팍팍해졌다”며 “2년여 전과 비교해 2㎏ 기준 1만원대였던 팥 가격이 4만원까지 치솟으니, 고객들이 한 끼 먹을 정도 소량의 재료만 구매하거나 절반 가격인 수입산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는 작황이 좋아야 하는데 여름이 길게 이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사정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식당 식자재 및 업소 안주 등 각종 식품을 판매하는 정성해(68)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그는 대보름을 하루 앞둔 이날도 부럼 등을 사가는 손님을 10명도 보지 못했다.

정씨는 “정월대보름을 설 명절보다 크게 쇨 때도 있었지만, 다 옛날얘기다. 지난 설 명절은 연중 최대 대목인 만큼 그나마 시장이 북적였지만, 고물가·경기침체 탓에 예년만큼 특수를 누리지는 못했다. 채소·과일·육류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며 “시장 상인들에게는 특히 명절 대목이 중요한데 이대로면 다가오는 추석도 걱정되는 상황이다. 올해는 또 먹거리 물가가 얼마나 널뛰기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격조사기관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오곡밥·부럼 재료 등 주요 10개 품목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전통시장 13만9700원, 대형마트 18만5220원으로 조사됐다. 전통시장은 전년 대비 6.2%, 대형마트는 8.0% 오르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소폭 가격이 상승했다.

구체적으로 오곡밥 재료(찹쌀·수수·차조·붉은팥·검정콩)는 올해 전통시장 4만2700원, 대형마트 6만2940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6.7%, 16.2% 올랐고 부럼(잣·밤·호두·은행·땅콩) 가격은 전통시장 9만7000원, 대형마트 12만2280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2.1%, 4.2% 상승했다.

특히 붉은팥(800g)은 전통시장 기준 지난해 1만1000원에서 올해 1만6000원으로 45.5% 급등했고, 찹쌀은 지난해 2600원에서 올해 3200원으로 23.1% 상승했다. 부럼 재료에서는 은행(16.7%), 땅콩(11.1%) 등이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오곡밥 재료의 가격이 비교적 크게 상승한 것은 재배 면적 감소와 지난해 집중호우·폭염 등 악천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주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인 붉은팥은 폭염으로 인한 생산량 급감으로 공급량이 줄면서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 같은 가격 급등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설 명절에는 이상기후 등의 원인으로 전통시장 기준 지난해(2024년 1월19일)에는 1만3500원이었던 배 3개 가격이 지난달 8일 2만7000원으로 2배 상승했고 무 1개 가격은 지난해(2024년 1월19일) 2000원에서 지난 8일 4000원으로 두배 올랐다. 김장철을 앞둔 지난해 10월에는 광주지역 배추 1포기 소매 가격이 9000원 후반대까지 치솟았다가 11월이 돼서야 3000원대로 하락했으나, 지난 1월에 다시 최고 5300원대까지 상승했다.

이날 팥을 소량 구매한 박모(60)씨는 “오곡밥을 해 먹으려다가 찹쌀과 팥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을 보고, 간단히 팥죽만 만들기로 했다. 팥도 수입산으로 최소한의 양만 구매했다”며 “요즘은 가격이 오르지 않은 식품을 찾기가 더 어렵다. 물가 안정이 체감돼야 소비도 활발해질 텐데 아직까지는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다운 기자 dawoon.na@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