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환 논설실장 |
송 장관 비판 납득할 수 없어
여기서 18세기 영국의 곡물법을 되돌아 본 것은 지금 우리 농업을 놓고 다투는 정치권의 정쟁이 곡물법 사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달 28일 여당의 반대 속에 양곡관리법 등 이른바 ‘농업 4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농업 4법은 양곡관리법과 농산물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보호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등 개정안을 이른다. 이 가운데 양곡관리법은 쌀 가격이 급락하거나 쌀이 초과 생산될 경우 정부가 의무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농산물가격안정법과 농어업재해보험법도 각각 농산물 최저 가격 보장제를 도입하고 보험료율 산정 시 자연재해 피해 할증 적용을 배제시키자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농어업재해대책법 또한 재해 이전에 투입한 생산비를 보장하도록 명시했다. 농민들로서는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농업 4법이 영국 곡물법의 외국곡물 규제처럼 절실한 희망이었을 터다.
그렇다고 농업 4법이 야당과 농민들에게 희망이 될지는 미지수다. 정부와 여당이 농업 4법을 두고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남는 쌀 강제 매입법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 송미령 농림축산부 장관은 4개 법안을 두고 농업 개혁과 미래를 망친다는 의미에서 ‘농망(農亡) 4법’이라고 했다. 법안별 문제점도 조목조목 짚었다. 특히 양곡법의 경우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고 값이 평년가격을 밑돌면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게 하는 게 골자인데, 그렇게 할 경우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해 온 쌀 공급과잉 해소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막대한 재정 부담만 몰고 올 것이라며 재의요구권(거부권) 건의를 분명히 했다. 채소와 과일 등 주요 농산물에 최저가격을 보장하겠다는 농안법 역시 특정 농산물 재배에 쏠림 현상을 불러오고 다른 품목에는 수급 불안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게 송 장관의 비판이다. 농어업재해보험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대해서도 송 장관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에 보험료율 할증 적용을 배제해 민간 보험사의 운영 차질이 불가피하고, 재해 발생 이전까지 투입한 생산비를 보장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고 했다. ‘법 자체가 재해 수준’이라고도 했다. 대한민국의 농업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특수한 농업’ 보호해야 마땅
식량이 무기가 될 수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농업은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보호받아 마땅하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도 농업을 ‘특수한 산업’으로 인식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생산비와 함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돌려주는 것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과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농업재해 관련 법안 또한 갈수록 심화되는 기후재난 속에서 농업과 농민을 보호할 최소한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백 번 양보해서 농업 4법이 되레 농업을 망치는 ‘농망 4법’이 맞다고 해도 오늘의 농촌을 지탱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동력이 농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제는 우리가 나서 쓰러져가는 농업과 농민을 돌보고 지키는 것이 옳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는 99만 9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2.3%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고령 농민은 2.8% 늘어난 52.6%를 기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고령인구 비율이 18.2%임을 감안하면 농촌의 고령비율이 3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경지규모도 1㏊ 미만이 73만 4000 가구로 전체 농가의 73.5%를 차지한다. 여기에 연간 농·축산물 판매금액이 1000만 원 미만인 농가도 전체의 64.5%에 이른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농정을 책임진 송미령 장관과 국정을 이끌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늙고 쪼그라드는 농촌, 65%가 한달에 겨우 100만 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농촌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농업 4법이 과연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농망 4법인가. 농민들이 요구해 온 ‘공정가격’과 공공비축양곡을 늘리자는 어쩌면 당연한 목소리가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국가 소멸에 앞서 당장 눈 앞에 다가온 농업 소멸을 정말 이대로 두고 볼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