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환 논설실장 |
그러다 보니 장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자기 분수에 넘치는 사치를 일삼는 사람에게는 ‘장 없는 놈이 국 즐긴다’고 나무랐다.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마라’는 말도 있다. 실속 없이 말로만 친절한 체하는 이들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경고다. 무엇인가를 장담할 때는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고, 다소 방해되는 것이 있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고 했다. 겉모양은 보잘 것 없는데 속 내용이 좋은 것에는 ‘뚝배기보다 장 맛’이라고 칭찬했고 못난 사람이 미운 짓을 일삼을 때는 ‘의젓잖은 며느리 사흘만에 고추장 세 바탱이 먹는다’고 힐난했다.
장은 가문과 집안의 전통을 지키는 문화로도 중요했다. 장흥고씨 양진재파 10대 종부 기순도 씨가 담양에서 만드는 ‘진장(陳醬)’은 3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도 기 씨는 ‘한식의 진정한 맛은 장 맛에 좌우된다’고 한다. 나주 밀양박씨 종가인 남파고택에서 만든 간장도 200년 종가의 자존심이 녹아있다. 500㎖ 한 병에 10만 원이 넘을 정도로 귀한 대접도 받는다. 얼마 전에는 충북 보은 보성선씨 종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씨 간장이 1ℓ에 500만 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변변치 않다고 생각했던 장의 가치가 그야말로 ‘사또 밥상에 간장 종지’ 격이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 위원회가 최근 ‘한국의 장 담그기’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2014년 시작된 이래 10년만의 결실이다. 최종 등재 여부는 다음달 초 파라과이에서 열리는 제19차 무형유산위원회 논의를 거쳐 결정되지만 지금까지 권고 판정이 뒤집히는 경우가 없어 등재는 확실한 것 같다. 우리의 장 문화는 수십대 내려온 한 집안의 혼과 손길이 스민 역사이면서 예술이다. 강강술래부터 아리랑과 김장 등에 이어 장 담그기 까지. 우리 조상들이 척박한 환경과 자연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 하고 전승시켜 온 우리들의 문화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