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전정미 작가가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1층에 전시된 작품 ‘불의를 향해 쏘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찬 기자 |
컬리넌리 작 ‘형상’. |
작가들은 제로베이스에 대해 “지역 작가들의 미술시장 진출 기회는 매우 어렵다”며 “강남 한복판에서 전시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가격을 떠나 큰 의미다. 앞으로도 이 같은 사업이 더 확장되고 늘어나 지역의 숨은 작가를 발굴하고 보물을 캐내는 작업이 더 활성화되길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컬리넌리(예명) 작가, “인간의 신체를 통해 내면을 찾는 과정”
4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2009년에 작가로 데뷔한 컬리넌리씨의 작품들은 팝아트 색감을 차용한 원색적이고 원시적으로 표현된 강렬한 그림들이었다.
그는 “미술 업계에서 내 그림을 보고 ‘신표현주의적 작품’이라는 평을 주로 내리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신체를 통해서 내면을 찾는 과정을 주관적 경험을 통한 색체화로서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들에서 피카소의 명언인 “그림은 일기를 쓰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와 음악 앨범명 등이 삽입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페미니즘 성향을 창작활동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며 “이를 위해 여성 신체의 곡선을 통해 그림의 미를 찾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관습을 남성의 신체를 이용한 작품들만 그림으로서 낡은 사회적 관점을 전환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날 전시된 작품 ‘Shape’는 한 남성이 각각 정면, 옆모습, 고개 숙인 모습 등이 모두 들어가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여러 내면을 분리화한 것을 표현했다.
그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경제 불황이 미술 업계의 편중화된 작품 선호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아쉬움도 드러냈다. “컬렉터들은 인테리어용, 선물용 등 언제나 감상하기 편한 그림을 원하는데 적가의 관점으로는 주관적 내면이 드러난 작품이 더 많이 전시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한태정 작 ‘행복한길’. |
한태정 작가는 목포에서 태어나 1994년까지 미술작가로 활동했지만, 결혼한 뒤 오랜 기간 붓을 놓고 있었다. 해외 자원봉사, 미술 파트타임 팀장 등을 맡았던 그는 자식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자 인생에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놓고 있던 붓을 다시 집어 든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줄며 자연스럽게 그림 작업에 몰두했고 지난 2022년 ‘더 드림’ 개인전을 시작으로 꿈에 대해 다시 되짚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봄의 화사함과 청둥오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통해 비상하고 싶은 포부가 들어가 있다. 그는 평소 여행 다니면서 자연을 감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자연의 변화와 바람의 움직임을 작품에 들어간 아이디어로 활용했다. 그의 작품에는 오리가 많이 활용된다. 농가에서 새해 풍년을 바라는 뜻으로 달아매는 장대인 ‘솟대’가 오리 모양인데 조류 중 인간과 가장 친밀한 오리를 의인화해 인간의 꿈과 희망을 빗대고 싶었다는 게 한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내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편안해지고 꿈을 꾸면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갖길 바란다”며 “나, 가족,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회상하고 우정·희망·행복을 그리며 어릴 때 꿈꿨던 미래와 희망을 작품에서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이현숙 작가가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1층에 전시된 그의 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박찬 기자 |
“찔레꽃이 예쁘게 향기를 품으며 지나가는 사람한테 위로가 되고 감동을 준다는 걸 느꼈다. 순간 감정이 벅차올라 울음을 터트렸다.”
중학생 때 미술부로 선발돼 그림을 시작한 이현숙 작가는 이후 결혼 생활과 교사로 활동하며 20여년 이상 그림과 멀어지게 된다. 지난 2018년 퇴직 후 다시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가 그림으로 추구하는 주제는 ‘꽃을 통한 행복한 삶’이다. 25년간 지병을 앓고 있어 건강 회복을 위해 산책길에 나선 어느 날 우연히 찔레꽃의 강한 향기를 맡았다. 이날을 계기로 찔레꽃의 향기로 느꼈던 감동을 관람객들에게 그림을 통해 재현하고자 했던 그는 각종 꽃을 촬영하고 생명력 있는 꽃의 사진들을, 화면을 통해 재구성한 뒤 색 배합해 그리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현대사회는 물질문명이 발달하며 풍족하고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삶은 규격화되고 개인주의적 사회로 변했다”며 “힘든 삶의 무게 속 고통받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이 가슴 한편 품고 있는 꿈과 사랑, 희망을, 꽃을 통해 되찾는 상징적 매체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정미 작가, “누구나 갖고 있는 작은 희망을 그림으로 일깨워주고 싶어”
신안에서 태어나 청년작가로 활동해 온 전정미 작가는 결혼과 육아를 계기로 미술활동을 10여년 중단한 뒤 4년 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밝은 그림과 풍경화 위주로 그리던 그의 작품세계가 완전히 바뀌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지인이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이를 계기로 사람, 관계, 무게에 대해 큰 고민을 하게 됐고 지금도 홀로 괴로움을 견디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고찰이 작품 속에 투영된다”고 밝혔다.
전 작가의 작품에서는 노동의 무게, 남성의 신체를 통한 극도로 차갑고 어두운 상태 등이 표현된다. 하지만 작은 희망도 함께 들어가 있는데 누구나 가지고 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 희망의 끈을 스스로 꺼버리는 상황들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사회에 대해 버티고 견뎌주라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그는 “남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순종적인 게 착한 게 아니라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이 진정 선한 사람이다”며 “활대를 가지고 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