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시기에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왔을까? 먼저 내부적으로 2019년 미국과의 핵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경제난, 한류 전파 등 주민 사상 이완이 커지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판을 뒤엎어 새로 구축하고 이를 계기로 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근본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김정은 정권은 남한과의 국력 차이가 갈수록 벌어져(남북간 경제력 50:1로 평가) 더 이상 정상적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1민족 1국가 지향의 통일논의는 체제를 약화시킬 뿐이라고 보고 독자적 국가로 생존하기 위한 방책이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와 새롭게 동맹 관계를 수립해 뒷배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도 작용하였고, 남한에 대해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만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과 함께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과거 구 동독은 독일 통일(1990년 10월 3일)이전, 북한처럼 ‘2국가 2민족론’을 제기하였다.
1949년 국가 수립 초기에는 헌법 제1조에서 “독일은 하나의 분리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이다”, “독일 국적은 단지 하나”라고 규정하였으나, 1968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민주공화국은 독일 민족의 사회주의국가이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같은 독일 민족으로 동독에는 사회주의 국가가, 서독에는 자본주의 국가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1민족 2국가). 특히 서독에서 1969년 10월 사민당 브란트 총리가 취임하면서 정부 성명을 통해 “비록 독일 영토 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서로 외국은 아니다”라고 하며 동독에 대한 국제법적 국가 승인을 거부한 데 대해 동독의 울브리히트 제 1서기는 1970년 1월 “여전히 독일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주장은 허구”라며 동독을 사회주의 독일 민족이라고 주장하였다. 동독은 1974년 10월의 개정 헌법에서 1968년 헌법 1조에 “독일민주공화국은 노동자와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하였고 기존 헌법의 “통일 및 민족”이라는 단어를 모두 삭제하였다. 동독이 ‘두 민족 두 국가론’으로 전환한 배경은 국력과 생활 수준에 있어 서독에 뒤떨어져 서독에 의한 통일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 결국 단일 독일 민족의 지속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북한도 동독과 비슷한 경로를 보여오고 있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초기 50-60년대는 남한보다 우세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 통일 공세를 펴고 ‘하나의 조선’을 강조하였으나, 80년대부터 국력이 역전되면서 통일논의에 소극적 태도로 전환하였다. 동독과 북한의 다른 점은 북한이 제기한 ‘두 국가론’을 수식하는 용어에 있다. ‘적대적, 교전국‘이라는 군사적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용어는 동서독 관계와 남북한 관계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서독은 동독의 2민족 2국가론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서독은 일관되게 1민족 1국가 입장을 견지하며, “동서독 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닌 특수관계”임을 내세웠다. 동독은 1974년 10월 헌법 개정으로 “통일 및 민족”을 삭제한지 16년이 지난 1989년 내부 민중혁명이 촉발되고 1990년 10월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북한의 두 국가론에 장기적 안목에서 차분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력이 약한 분단국의 일방 당사자는 생존 차원에서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남한은 북한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여 남북 관계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일관된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북한의 체제 위기감이 커진 상황에서 통일을 강조하기보다 우선은 평화를 중시하면서 궁지에 처한 북한에 군사도발의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사실상 보유하고 있고 한반도에 배치된 무력 체계는 세계에서 높은 수준이다.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돌발 상황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 대응체제를 점검하고 동맹국간 긴밀한 협조체계를 가동하며 북한과 중-러에 대해서도 오판하지 않도록 경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부는 남북관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 상황을 공유하고 우리 내부 갈등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 체제의 비정상성이 심화되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북한을 자극하기보다 북한이 변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정책 기조가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