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노 광주시의원 |
위 하루 일과는 일제강점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2024년 대한민국의 8월 15일 광복절이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시도한 정부는 광복을 부정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고, 이에 반발한 광복회는 광복절 경축식을 따로 열었다. 상식이 통하는 단체와 인사들은 둘 중 광복회 주최의 경축식에 참석했고 해방 이후 처음으로 두 개로 나뉜 경축식을 본 국민은 경악하고 분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서는 최악이었다는 혹평이 지면을 가득 채웠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부인가, 총독부인가”라는 메시지로 비판했으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민의 입을 막고 끌고 나가기를 일삼으며 국민이 죽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정부가 이제는 역사를 입맛대로 바꾸려 하고 있다. 국민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굴종 외교에 대한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그간 비상식적인 행태를 수없이 일삼은 현 정부일지라도 정치적으로 그럴싸한 변명이나 저들이 취할 이익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역사 왜곡은 어떤 방향으로도 이익이 될 수 없는 행위다. 게다가 보훈은 늘 보수가 챙겨오던 가치 아닌가. 일관성마저 내팽개칠 정도로 역사를 왜곡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무엇일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아, 일본 입장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다.
반면, 같은 날 경험한 광주의 기념식을 떠올려본다. 광주의 광복절 공식 행사에서 광복회 고욱 지부장께서는 기념사에서 가감 없이 분노를 표출했고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또한 기념공연은 ‘레미제라블’의 OST로 알려진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였다. 이 곡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절대왕정에 분노한 프랑스 시민 계급의 외침을 표현한 노래다. 광주시가 계급사회로부터 자유를 외치는 투쟁의 노래를 광복절에 선곡한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최소한의 눈치라도 있다면 정부는 이제 정말 각성해야 할 것 같다. 국민이 왜 분노하고 있는지, 두 개로 나뉜 경축식과 지자체 기념식에 울려 퍼진 투쟁의 노래가 무얼 암시하는지 눈치채야 한다. 품격 있는 경고는 이제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징조다.
그러나 고작 일주일이 지난 지금, 벌써 이날의 만행이 잊혀지고 있다. 심판을 받아야 할 행위가 준 충격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빨리 우리의 머릿속에서 24년 8월 15일이 지워지고 있다. 거듭된 실망으로 어떤 기대조차 하지 않게 돼버린 현 정부가 국민이 분노하는 역치까지 키워버렸다. 그리고 높아진 역치 탓에 실무율이 적용돼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빼앗긴 요새(히브리어; Masada)를 기억하며 지금도 훈련 구호로 ‘Masada never again!’을 외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운 2024년의 광복절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 교토부는 모든 여행사에 공문을 보내 12만 6000 조선인의 영혼이 잠들어있는 귀무덤(코무덤)을 한국 관광객의 관광코스에 넣지 못하게 만들었다. 참배도 할 수 없게 문도 걸어 잠겨 있다. 빼앗긴 들은 아직 되찾지 못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그저 그런 유행어 따위가 아니다. 세상만사를 관통하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