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으로 고요가 흐르는 듯하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갑자기 내달렸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함성과 함께.
꽉 막힌 반도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이 낯선 광경 앞에서 나오는 본능적 발로인가.
연암 박지원이 요동 벌판을 첫 대면 하면서 읊었던
“호곡장(好哭場)이니 가이곡이(可以哭矣)로다!”가 생각나고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구절도 떠오른다.
“한 잔 술에 만 리가 보이도다.
저 사막 너머에도 내 술친구가 있으려나.”
아득한 옛날을 불러보지만
모두가 바람이 되고 모래 알갱이가 되었나.
한 무제가 하서회랑의 흉노를 몰아내고 세웠다는
양관(陽關)이 있었다는 그 자리.
‘서역남로’로 통하는 관문인 이 길에 오가는 이 없고,
우리들의 작은 울림 또한 메아리도 없이 사라진다.
오늘도 저 광야를 향하여 내달리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