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노 파바로티, ‘천상의 목소리’…인류가 낳은 세계 최고의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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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루치아노 파바로티, ‘천상의 목소리’…인류가 낳은 세계 최고의 테너
성악가의 꽃 ‘테너’…‘하이C’의 제왕
오페라 부파·사실주의 등 모두 섭렵
도망고·카레라스와 ‘쓰리테너’ 명성
클래식 대중화 등 세계음악사 ‘한 획’
  • 입력 : 2024. 08.01(목) 17:10
루치아노 파바로티
‘테너(Tenore)’는 성악가의 꽃이라 불리운다. 오페라에서 테너의 역할은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상대역으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아리아를 부르며 극을 이끌어가는 화신이다. 특히 화려한 고음으로 관객을 감동의 혼수상태로 이끄는 테너 주인공 역이 누구냐에 의해 올려지는 작품 프로덕션의 성공이 좌우될 정도니, 작품이 올려지기 전 스토브리그를 갖는 제작진들은 좋은 테너를 찾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아이다 라다메스역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하이 C’의 제왕이라 불리며, 오페라 부파부터 베리즈모(사실주의) 영역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는 성악가로서 최고의 부와 명예를 얻은 인물이다. 그의 고음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기에, 그가 출연한 공연은 엄청난 주목을 받고 조기 매진으로 극장을 뜨겁게 달궜다. 흥행의 보증 수표가 된 파바로티를 데려오기 위한 극장 간의 경쟁 역시 엄청났다. 그가 출연하는 오페라 프로덕션은 언론과 세상 이목의 중심에 섰다.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의 새로운 시즌은 파바로티를 섭외하는 것이 극장장의 능력이라 할 정도였다. 파바로티의 공연에는 팬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함께 했다. 관객들은 그가 등장하는 모습만 보여도 박수를 보냈다. 오페라의 전체 흐름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쇄도하는 앙코르 요청에 자신의 아리아를 반복해 부르는 것이 다반사가 될 정도였다. 또한 1988년 독일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사랑의 묘약> 네모리노 역을 맡은 공연은 역사상 가장 많은 커튼콜을 받은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는데 커튼콜 시간만 무려 1시간 7분에 달하며, 165번 동안 무대에 다시 등장해야 했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파바로티의 아버지 루치아노 페르난도 역시 아름다운 미성의 소유자이자 테너 가수였다. 하지만 직업 가수가 될 수 있는 무대 장악력이 없어서 그는 빵 굽는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하지만 파바로티는 아버지 덕분에 엔리코 카루소, 베냐미노 질리 같은 금세기 최고의 테너들의 음성을 음반으로 매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음반을 통해서나 들을 수 있었던 선망의 대상인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 1890~1957)의 음성을 1947년에 직접 듣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성악가였던 질리가 파바로티의 고향인 모데나 시립극장에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 주역 가수로 노래를 불렀는데 이 소식을 들은 파바로티는 극장으로 달려가 질리의 연습을 경청했다고 한다. 이 만남은 파바로티가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습하는 거장의 목소리에 푹 빠진 파바로티는 질리가 연습을 끝내자마자 그에게 달려가 “저도 선생님과 같은 테너 가수가 될 거에요. 그런데 선생님은 성악 공부를 얼마나 오래 하셨어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질리는 웃음을 지으며 파바로티에게 “그래? 멋진 친구! 좋았어! 자네 열심히 해야 해! 알겠지?” 그리고 이어서 “너는 지금 내가 성악 공부하는 걸 본 거야. 난 항상 공부하고 있단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파바로티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아 평생 공부하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가 유학 시절 지도교수를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파바로티는 60세가 넘어서도 로마의 한 선생님에게 연주가 없을 때 자신의 소리를 점검받는 등 좋은 발성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파바로티는 1961년 이탈리아 레조의 에밀리아 시립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 <라 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진가는 당시 최고의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 Dame Joan Sutherland, 1926~2010)의 상대역으로 세계시장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서덜랜드는 엄청난 거구로 함께할 테너 주역을 구하는 데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파바로티의 준수한 외모와 건장한 체구, 그리고 반짝반짝한 그의 찬란한 음성은 벨칸토 오페라를 레퍼토리로 하는 서덜랜드에겐 상대역으로 금상첨화였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에 함께 제작한 도니체티와 벨리니, 그리고 로시니와 베르디의 몇몇 작품이 속하는 벨칸토 오페라 레퍼토리는 수작으로 불리며 음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특히 파바로티는 서덜랜드 남편인 지휘자 리처드 보닝(Richard Bonynge, 1930~)과 함께 드림팀으로 불리며 오페라 음반 역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기었다. 이후 파바로티는 벨칸토 레퍼토리를 넘어 <아이다>, <팔리아치>, <안드레 쉐니에>, <투란도트> 등 사실주의 오페라까지 대성공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테너로 등극하게 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파바로티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와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1946~),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 1936~)와 함께 1990년 로마에서의 첫 시작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쓰리테너 콘서트’로 엄청난 흥행을 거두며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폭제가 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전성기가 지난 뒤에 자선 콘서트, ‘파바로티와 친구들 시리즈’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엘튼 존, 마이클 볼튼, 스팅, 머라이어 캐리, 본 조비, 셀린 디온, 보노, 스티비 원더, 보이 존, 스파이스 걸스, 주케로, 안드레아 보첼리 등과 같은 슈퍼스타들이 이 시리즈에 함께했으며 실황 음반 역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였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파바로티의 대성공은 무엇보다도 탄탄하고 아름다운 음색, 화려한 고음과 함께 자유로운 상상력, 열린 사고, 탁월한 마케팅 능력 덕분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에 조안 서덜랜드와 함께할 수 있었던 엄청난 행운 역시 대성공의 요소이다. 파바로티는 음악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의 과거 판소리 전수처럼 도제교육을 통해 성장한 성악가이다. 그래서 자유롭고 상상력이 뛰어난 파바로티는 음악에서도 종종 즉흥적이면서도 예상치 못한 에너지를 분출해 데뷔 초기에는 많은 지휘자와 마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파바로티는 오페라계에서 가는 소리부터 강렬한 소리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다루는 특별한 성악가였다. 특히 도니제티의 <연대의 아가씨>의 남자 주인공 토니오역은 파바로티에게 ‘하이 C의 제왕’이라는 영광의 닉네임을 안겨주었다. ‘하이 C’는 성악가에게 특별한 능력이 없으면 도저히 낼 수 없는 음이다. 전성기의 파바로티는 이 음을 탁월하게 연주하여 토니오 역을 맡은 파바로티의 노래에 대해 언론은 ‘가슴에서 나오는 도’에서 더 나아가 ‘레로 가는 음’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파바로티와 친구들. 사진 왼쪽부터 파바로티, 라이오넬 리치, U2의 보노. 출처 멜론
성악가 파바로티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다. 성악가의 인생으로 미칠 듯 살아왔던 것으로 우리는 과연 바쁜 그에게 여가 생활이 있었을까?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우람한 몸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먹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한국 연주때 호텔에서 귤 한 상자를 혼자 다 먹은 일화는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먹는 것 못지않게 그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어릴 적부터 축구, 테니스, 승마를 즐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9시간 연속해서 화폭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었다고 언급했다. 파바로티는 오로지 성악에 죽고 사는 음악에 미친 사람이기보다는 자신에 관한 애정이 넘쳐났으며, 그러하기에 그는 인생을 즐길 수 있었고, 여기서 생성된 에너지는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악가 중 한 명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 어수선한 세상과 극심한 경제 불안 그리고 여기에 무더운 여름까지, 이럴 때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 한 사발과 시원한 물줄기 같은 파바로티의 고음을 들을 수 있다면 잠시 모든 것이 감동으로 리셋되지 않을까?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루치아노 파바로티.
파바로티의 명음반 : 파바로티를 하이C의 제왕으로 등극시킨 아리아 / Gaetano Donizetti(1797-1848) La fille du regiment / Act 1-Ah! mes amies, quel jour de fete!… Pour mon ame, Tenor L. Pavarotti /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지휘자 Richard Bony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