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박지에 새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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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은박지에 새긴 사랑’
  • 입력 : 2024. 06.23(일) 17:48
  • 최도철 미디어국장
최도철 미디어국장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중략 //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김남주의 시 ‘노래’(죽창가) 중에서

 70~80년대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 역사의 질곡에 온몸으로 맞서 싸운 전사(戰士)요, 시인이었던 김남주. 올해는 시인과 세상을 달리 산 지 삼십년이 되는 해로, 타계 30주기를 맞아 추모제와 학술제가 잇따라 열렸다.

 김남주의 삶과 정신을 기술하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간추리면 이렇다. 시인은 1945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전남대에서 공부했다. 대학 4학년때 3선 개헌 반대, 교련반대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2년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다.

 석방후 김남주는 농사일을 거들면서 ‘진혼가’, ‘잿더미’ 등 8편의 시를 ‘창비’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러나 김남주는 시를 쓰는 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당시 가장 강력한 반유신 지하조직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가입한다. 혁명을 꿈꾸며 전사(戰士)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시인은 1979년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로 이감된 후, 1988년 12월 전주교도소에서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9년 3개월 동안을 감옥 안에서 ‘전사 시인’의 삶을 살았다.

 김남주에게 0.7평의 감옥은 창작의 산실이었다. 그는 칫솔을 갈아 펜을 만들었고 우유곽 은박지에 시를 새겼다. 어렵게 구한 볼펜과 책의 여백, 똥색 화장지는 훌륭한 창작도구였다.

 김남주는 생전 500여 편의 시를 남겼는데, 그중 360여 편을 옥중에서 썼다. 그 시들은 소위 ‘운동권’ 학생들의 교재가 되었고, 노래패의 투쟁가로 재탄생했다. 가수 안치환이 부른 ‘노래(죽창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자유’ 등이 이때 쓰여진 시들이다.
 김남주는 옥중에서 얻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1994년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김남주 시인 ‘30주기’를 맞아 그의 고향 해남에서도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은박지에 새긴 사랑’을 주제로 내일(6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해남군 땅끝순례문학관에서 열리는 추모 아카이브전이다.

 1980년대라는 한 시대를 대표하면서도 동시에 고난에 찬 우리 역사로부터 민중적·민족적 전통을 올곧게 이어받은 시인으로 평가받는 김남주 시인의 문학정신과 삶을 되새기는 의미가 큰 행사다.
최도철 미디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