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취재1부 기자 |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장바구니에 김 한 장 담기 어려운 시기에 무작정 가격을 인상하는 것보다는 양을 조금 줄이는 게 낫지 않느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용량이 줄어든 제품을 구매한 뒤 평소보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소비의 액수는 늘어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제조사가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배신했다는 데에 있다.
고깃값·채솟값·과일값 어느 것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는 고물가 시대다.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만약 ‘슈링크플레이션’ 제품의 포장지에 ‘용량 20% ↓’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면 적어도 소비자들은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래 이용하던 물건을 구매하되 돈을 아낄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비싸더라도 용량이 많은 다른 제품으로 눈길을 돌릴 것인지 말이다. 제조사는 교묘하게 용량을 줄이면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상품을 믿고 구매한 소비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배신했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다. ‘우유는 1000원도 안 되는데 사람들이 잘 안 바꿔. 왜? 돈을 들여서 사 먹어 봐야 알 수 있거든. 고작 1000원인데도 선택의 과정이 너무 많으니까. 반면 버튼만 누르면 휙휙 돌아가는 TV 채널은 쉽게 바꾸지.’
제조사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치킨너겟 하나만 검색해도 수많은 제조사의 상품이 나오지만, 원래 이용하던 제품에 불만이 없는 소비자는 쉽게 다른 제품을 시도해 보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용량 변경을 공지하지 않고 교묘하게 속여 파는 행위는 소비자를 향한 기만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제조사에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원재룟값이 오르는데 가격을 그대로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이 용량 변경을 확실히 인지하고 각자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어야 했다. 제조사는 스스로 부끄러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홈페이지 공지’와 같은 허울뿐인 행위로 소비자가 용량이 줄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소비자가 용량 변경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원래 구매하던 제품을 ‘믿고’ 구매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는지.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들의 ‘꼼수 인상’을 막기 위해 오는 8월3일부터 ‘사업자의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 개정안’을 시행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조업자는 제품 용량을 줄였을 때 △포장 등 표시 △제조사 홈페이지 게시 △제품 판매 장소(온라인 포함) 공지 중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해 용량 등이 변경된 날부터 3개월 이상 소비자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를 어기면 1차 500만원, 2차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기업이 ‘홈페이지 공지’를 선택할 경우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고령자나 제조사 홈페이지까지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는 일반 소비자는 용량 변경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용량 변경을 공지하면 슈링크플레이션이 일어나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고 소비자 몰래 용량을 조절했다가 적발돼도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만 지불하면 된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꼼수 인상’에 속지 않도록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