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저승세계의 시각적 상상력이 흥미로운 영화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저승세계의 시각적 상상력이 흥미로운 영화
리 언크리치 감독
‘코코’
  • 입력 : 2024. 06.09(일) 17:32
리 언크리치 감독 ‘코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리 언크리치 감독 ‘코코’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명작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필자에게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2018)가 그 가운데 하나다. 필자만 그리 여기는 것이 아니었던가 보다. 오늘의 영화관에 또 ‘코코’가 걸린다. 사람이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종교적 의미의 사후세계와 주술적·민속적 의미의 사후세계, 거기에다 작가적 상상력을 더한 사후의 세계는 그 나름대로 남긴 사람들의 절망을, 슬픔을 어느 만큼은 위로하는 수단이 된다고 본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는 이 위로를 훨씬 더 밝고 맑게 터치하고 있다.

마마 코코의 증손자인 미겔은 뮤지션이 꿈인 소년이다. 코코는 4대째 이어가고 있는 가업, 수제화를 만드는 신발 장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온 가족이 음악이라면 질색이다. 리베라 가문의 가업을 이어가야 할 5대손 미겔은 음악이 워낙 좋은지라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가올 축제 ‘죽은 자의 날’ 뮤직 콘테스트에 참석할 요량이다. 미겔은 자신의 우상인 가수 고(故) 에르네스토의 기타와 집안의 제단에 있는 얼굴을 찢어낸 사진 속 5대조 고조부의 기타가 똑같은 것을 보고,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고조부일 것으로 확신한다. 급기야 에르네스토 추모관에 있는 기타에 손을 대면서 뜻하지 않게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미겔은 그곳에서 만난 죽은 자들 사이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그 진실은 마침내 고조부의 딸인 증조모 코코의 추억을 되찾아주고 5대조 할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오해를 바꾸어놓기에 이른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겪는 환상적인 미겔의 모험담.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사이에 맺혀 있는 갈등의 매듭을 풀어가는 영화 ‘코코’는 매우 독특한 배경을 소재로 삼고 있다. 객석에서는 저승세계가 과연 저럴까 하면서도 저절로 몰입하게 되는 스토리, 마침내 관객은 죽은 자들을 밝은 기운으로 추모하게 된다. 영화 ‘코코’를 통해 멕시코의 명절 ‘죽은 자의 날’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멕시코 인들은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일 년에 한 번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세상에 내려온다고 믿는다.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에 죽은 자의 사진, 꽃과 음식으로 집안에 제단을 차리고 영혼들이 집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길에 꽃잎을 뿌려 이들을 기린다 한다. 사람들은 해골 분장을 하며 축제처럼 지내는데, 고대 멕시코 아즈텍(Aztec) 문명에서 비롯된 풍습이라 한다.

‘죽은 자의 날’ 기간중에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사이에 맺혀 있는 갈등의 매듭을 풀어가는 영화 ‘코코’의 핵심 테마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이 있다. “누군가 죽고 이승에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진정한 죽음이 찾아온다”는 대사가 그것이다. 어찌 보면, 산 자들이 이승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잘 죽는 것인가에 대한 숙제의 일말이기도 하다. 영화는 저승세계를 그려내는 시각적 상상력이 뛰어나 흥미롭다. 뮤지컬로 풀어내는 서사도 조화롭다. 애니메이션이 갖는 풍요로운 전개방식 덕에 영화는 시각적 청각적 울림의 공간을 넘나들며 표현의 자유를 구가한다.

실사 못지않은 깊이도, 생각할 거리도 여운으로 길게 남긴다. 어쩌면 실사가 아니라서 더욱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이승과 저승의 대조적 배경 외에도 눈에 띄는 배경이 있다. 부계와 모계의 대조이다. 멕시코는 후치탄 모계사회가 전통적으로 있어서 모계중심 가계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영화에서처럼 코코의 어머니 이멜다로부터 비롯된 가업을 대대로 이어가는 대가족 리베라 가문은 모계로 이어진다. 리베라 가문의 사위들도 모두 이 가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렇듯 미겔의 모계는 신발로, 부계는 기타로 대변된다. 음악의 유전자가 5대를 뛰어넘어 미겔에게서 발현되는 것은 서로 상충했던 과거와 현재, 내세와 현세, 부계와 모계 간에 맺혀 있는 섹티즘의 매듭을 화합으로 푸는 중요한 소인이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