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추억 따라 여행 하는 추억 밟기 로드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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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추억 따라 여행 하는 추억 밟기 로드 무비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 입력 : 2024. 05.26(일) 17:21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포스터. ㈜미디어캐슬 제공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미디어캐슬 제공
필자는 일본 영화를 챙겨 보는 편이다. 일본 영화를 전혀 수입하지 않았던 시절, 영어회화 클래스에서 한 대학생이 빌려준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 레터’(1995)를 본 적이 있다. 처음 접하는 일본 실사영화였다. 일본 멜로물은 섬세한 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와는 미묘하게 다른 감성이라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일본 영화를 국내에서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1998년 말부터였다. 최초로 수입된 영화는 공교롭게도 ‘러브 레터’였다. 수입된 첫 일본 영화인지라 대사인 “오겡키데스카…, 와타시아 겡키데스” 정도는 온 국민이 다 알 만큼 영화관이 성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서 만난 지인 미치코는 이 영화를 모른다 했다.

내 경험과 유사한 상황이 영화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에도 담겨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대만 청년 지미(배우 쉬광한)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영화 ‘러브레터’를 일본 청년 코지(배우 미치에다 슌스케)는 모른다는…. 이 영화처럼 영화 속 소재로 영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도 그러하다. 여주인공 애니(배우 멕 라이언)는 영화 ‘러브 어페어’(1939)를 볼 적마다 눈물을 펑펑 쏟는다. 이 감성을 빌려 말도 안 되는 서사의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영화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에서 영화 ‘러브 레터’는 매우 중요한 소재이다. 눈을 볼 수 없는 대만의 타이난 지역에 눈의 고장에서 온 일본 여성 아미(배우 키요하라 카야)는 18세 지미에게 그저 꿈의 여신이다. 지미가 넋을 잃고 본 영화 ‘러브 레터’ 스토리에 아미는 눈물을 쏟는다. 영화 에 담긴 죽음과 애절함은 이들에게 쉽게 대입되는 복선의 역할을 한다. 영화 속 설경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임의 배경이자 그녀를 찾아 타다미를 향해 나서는 길목의 배경이다. 아미가 남긴 편지 등등. 그만큼 ‘러브 레터’는 지미에게 인생영화이자 감독이 꼭 붙들고 있는 소재였던 것이다. 아미는 지미에게 단순한 첫사랑이라기보다는 성장통이었고 성공 이후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원형으로서 역할한다. 감독은 제2의 ‘러브 레터’를 꿈꾸었을는 지 모른다. 그 꿈의 무리함을 이 역할이 그나마 뻔한 서사에서 벗어나도록 한 듯하다.

대만·일본 합작 영화라 중국어와 일본어가 공존하는 영화가 별 거부감이 없어 신기했다. 동북아 인으로서의 익숙함이나 정서가 유사한 점이 많아서일는지도 모른다. 배우 쉬광한이 18세와 36세를 동시점에서 연출할 수 있는 외모를 가졌다는 점도 신기했다. 18년의 차이를 단숨에 극복할 수 있는 외모도 배우에게는 필요 요소. 영화의 원작은 에세이다. ‘청춘 18×2 일본 만차유랑기(日本慢車流浪記)’를 원작으로,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했다. 에세이에서 출발한 영화답게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1인칭 시점에서 추억을 따라 여행을 하는 추억 밟기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 안에 담긴 잔잔한 멜로. 멜로 영화의 단골 소재는 불치병으로 인한 눈물 쏟는 이별이다. 감독의 전작인 ‘남은 인생 10년’(2022)도 마찬가지의 소재라 마찬가지의 식상함과 함께 작품성을 평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멜로 영화에 작품성은 실상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영화를 보며 누구랑 어떤 추억을 나누었는지, 나의 공감영역에 오버랩 되는 지가 더 의미 있는 것이라서….

영화 속 풍등 신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미의 그림에서 더욱 낭만적으로 비치는 풍등. 풍등 만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순전한 멜로여야 할 듯 싶다. 반드시 좋은 사람과 좋은 추억을 나누기 위해 띄워 올리기를 청춘들에게 추천해본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