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종 도의원 |
의료인력 증원과 관련해 ‘타당하고 합리적인 통일 방안’을 도모하고자 정부 나름대로 준비했을 담화문 발표는 안타깝게도 국민과 의료계의 동의는 끌어내지 못하였으며, 이 담화로 인해 의료인력 증원과 관련, 타협의 여지 없이 오히려 의정 간 골만 더욱 깊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도 다수 존재한다.
불통 정부를 향한 혹평 또한 각계각층에서 쏟아졌다. 같은 날 오후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2천 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며, 의료인력 증원 규모를 포함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전향적 발언으로 황급히 사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정 간 대치가 장기화되며 국민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도내 시군 대부분이 의료취약지인 전남의 경우 부족한 의료 여건 속에서 그마저 버텨오던 ‘기초 진료권’마저 지켜지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정부가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농어촌 보건소, 보건지소에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를 상급종합병원으로 차출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의료서비스가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들은 아픈 게 죄요’ 라는 지역 어르신들의 절규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전라남도의 경우 2023년 배치 공보의 수는 267명이다. 그러나 의료대란 이후 보건복지부의 진료 차질 해소 방침에 따라 현재 전남 내 전체 공보의의 무려 16.8%인 45명의 공보의가 다른 지역에 파견됐다.
도서 지역이나 오지, 벽지 등 의료취약지의 보건소나 지소에서는 공보의를 차출하지 않고 공석이 된 보건기관에 대해 순회 진료를 추가로 시행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으나,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초 진료권의 붕괴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혹자는 이를 아랫돌 빼 윗돌 괴기라고 말할 정도이다. 가뜩이나 생활 여건이 열악한 농촌에 일어난 출구 없는 위기이자, 의료 재난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 지난 4월 1일부터 의대 교수들은 주 52시간, 개원의들은 주 40시간으로 진료시간 단축에 들어갔다. 장시간 근로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기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안전한 의료 서비스를 갖추겠다는 명분이나, 이 시기에 추진하는 것은 법정 근로시간 근무를 통해 의료 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것으로도 판단된다.
의료계는 개원의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이기에 국민에게 큰 피해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작금의 이 혼란 속에서 의료 중단과 더불어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느끼는 불안감까지 가중된 상황이다.
최근 익수사고로 사망한 생후 33개월의 여아는 병원에 옮겨진 뒤 사망하기까지 무려 2시간 51분 동안 다른 상급 병원 9곳에서 전원 요청을 거부당했다. 분초를 다투는 긴급상황에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벌어진 것이다. 전원 거부와 사망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더 세밀한 조사가 진행되겠으나 일련의 상황들이 이 사망에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의·정간의 대립은 지속되며 깊어지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도, 지금 문제에 대한 출구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의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초심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의 진심은 과연 옳은 것인지 국민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담화 이후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 수습본부 브리핑을 통해 의사들에게 이제 의료현장으로 돌아와 의료 개혁의 이행 방안과 이를 위한 투자 우선순위 등 구체적인 의료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게 제시해 달라고 밝혔다.
또한, 집단행동을 접고 과학적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의료계 내 통일된 더 합리적 방안을 제안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화의 여지를 남겨 두었으니 조속히 갈등을 수습하고 의료 개혁의 완수에 동참해 달라는 뜻을 의협에 표명한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대화의 여지를 보인 만큼 의협에서도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의료계에서도 의료현장의 혼란과 공백의 조속한 해소를 위해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국민 생명권 수호를 위한 책임감을 바로 세워야 한다.
물론 양측간의 대화 시도만으로는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료 공백이 장기화할수록 국민의 불안감과 농어촌 의료현실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에 정부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의 제시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응급상황에 적시 대처가 가능한 충분한 의료인력을 확충하고, 이 인력들이 지역 유출 없이 지역 의료 여건 개선에 투입될 수 있도록 농촌의 열악한 생활 여건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개선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
한 치 양보 없는 이 힘겨루기에서 누가 승자가 되느냐는 사실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상황에서 고통을 느끼고 계시는 국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 국민을 위한 ‘온 국민에게 평등한 의료기본권’이라는 문제의 본질에 집중해 정부와 의협 모두 당사자이자 주체로서 갈등과 분쟁 해결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조정을 협의해 나가길 진심으로 바라며 더불어 지금의 이 모든 과정이 마지막에는 지방의 의료 인프라 혁신이라는 성공적 결과로 되돌아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