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완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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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완도의 봄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3.27(수) 11:18
임효경 교장
완도가 북적북적 수선스럽습니다. 봄이 왔다고, 꽃들도 여기저기서 자태를 뽐내고, 나무들도 기지개를 펴고, 완도중 운동장도 시끌벅적합니다.

꽃샘 추위가 바람을 세차게 부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 연합관사를 빠져나와 완도초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반짝임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별처럼 빛나는 노오란 개나리꽃들이 무더기로 내 눈 앞에 짜잔!하고 펼쳐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와~ 언제 이렇게 피었니? 너희들 참 부지런하구나. 얼른 휴대폰 꺼내어 접사렌즈로 그 멋진 모습 찍어주었습니다. 건물과 나무들은 배경으로, 개나리꽃을 주인공으로.

그런데, 저쪽 완도초 개교 100주년 기념 동산 마당 끝에서 사태가 난 것처럼 노란 물결이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수선화가 군락을 이루어 우리도 여기 피었어요~~!!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바람이 차가운 올 봄, 따듯한 땅 기운을 받으려는지 낮은 키로 겸손하게 피어있네요. 자기들끼리 체온을 나누려는 듯 올망졸망 피어있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요. 찰칵 찰칵 여러 모양으로 사진에 담아 두었습니다.

아아, 벚꽃이 가지가지마다, 목련이 또 가지가지마다 꽃봉오리를 달고 서 있는 모습도 장하고 웅장합니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 장대한 수고를 사진에 담아 주었습니다. 얼마나 수고했을까요? 그 많은 가지에 저렇게 많은 꽃봉오리를 건사하기 위해서. 겨우내 얼었던 가지를 녹이고 덥혀서, 봄의 땅으로부터 물줄기를 끌어 올리느라 얼마나 많은 애를 썼을까요?

이 봄의 꽃들과 나무들은 소심한 것 같으나 강합니다. 이제 막 겨울의 스산한 침묵에서 걸어 나온 참이라, 소심해 보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변화 속에 소멸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스스로 보호하고 순리대로 지속할 것이기에 참으로 장하고 강한 존재들입니다.

드디어 완도중 운동장도 북적북적 시끌벅적 활기를 찾았습니다. 겨울의 침묵을 밀어내고 소심하지만 강한 존재들이 교실과 운동장, 체육관 등 학교 곳곳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번 주 학생자치회 주관 반 대항 교내 축구 리그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하다보니 목요일 점심시간에는 3학년 1반과 1학년 3반이 맞붙는 대항전이 되었습니다. 아~ 1학년들이 그 사실 앞에서 얼마나 긴장하고 걱정했을까요? 일방적인 게임이 될 것이라 모두 예견했지요. 교문을 들어서면서 3학년 선도부 형들 앞에서 쭈뼛쭈뼛 활개를 치지 못하는 1학년 아이들이 그 형들과 대결한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지요. 점심을 마친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게임이 진행되었고, 5-0으로 물론 지긴 했지만, 최선을 다했고, 전후반 30분 동안 여러 번 환호를 받았습니다. 3학년 형들과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며칠 전부터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연습을 하고 호흡을 맞춰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지, 오호라~~ 한 뼘은 더 키가 큰 형들 속에서 기죽지 않고 제법 힘차게 공을 받아내고, 쫄지 않고 개인기를 뽐내고, 수풀 속 물고기처럼 드리볼도 제법 했거든요.

1학년 학생들이 어리고 미숙하지만, 중학생이 되어보니 초등학교 때와 다르게 의젓해지고 나도 이젠 중학생이다! 멋진 모습을 뽐내려 짐짓 더 뛰고 달리는 모습 속에서 강하고 당당한 씨앗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완도의 바다를 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소심함과 강함을 동시에 키워주는 것인지 몰라요. 저 바다는 무섭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고 극복하고 건너가야 할 대상이지요. 그러면서 또 저 멀리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의 가능성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지요. 특히 우리 학교 교정에서는 청해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형세라, 날마다 하교 길에 더 멀리 보게 하거든요. 힘들게 오른 아침 등굣길도 차라리 저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힘들어서 무심하게 시작하는 학교의 하루가 즐겁고 힘차게 채워지거든요. 3월 새 학기 이것저것 적응하느라 학교 생활이 만만치 않지만 학교가 재미있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이 멋지고 존경스럽다고 합니다. 넓은 운동장이 있으니 친구들과 축구도 맘껏 하고, 특히 친절하고 맛도 좋는 완도 맛집 급식실 점심도 정말 좋답니다. 벌써 좋아하는 선생님도 생겨서 교무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모습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봄의 꽃들과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어리고 미숙한 이 학생들이 어서어서 자라서 형들처럼 잘해야지 기개를 키우느라 바쁜 부산함이 느껴지는 완도의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