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쓰임이 다한 비천한 존재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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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전남일보]쓰임이 다한 비천한 존재의 존재
한희선 설치미술 전 ‘불구부정’
31일까지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 입력 : 2024. 03.25(월) 16:1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한희선 작 불구부정.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창작소에서 존재가 남긴 흔적을 통해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감각과 관점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담은 한희선 작가의 설치미술 전시 ‘不垢不淨 (불구부정): 먼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가 31일까지 열린다.

존재의 흔적을 통해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돼 있음을 주제로 작업해 온 한 작가는 녹, 먼지 등 주로 버려지거나 낡고 쓰임이 다한 비천한 재료와 연약하고 부드러운 매체를 사용해 작품을 완성한다. 두 매체는 극명하게 대조되지만, 흔적 표현 작업에 있어서는 상호 순환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2021년부터 수집한 본인의 머리카락을 주재료로 한 실험적인 창작 활동이 담겼다. 작가는 누군가에겐 다소 부정적이거나 혐오스러울 수 있는 머리카락에 대한 시선과 관점의 변화를 꾀해 미와 추, 더러움과 깨끗함의 경계를 허물고 전복한다.

강화도에서 내려와 지난 1월부터 약 2개월간 남구 양림동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며 광주시민의 시선이 아닌 방문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광주를 담은 작품도 선보인다.

이 중 ‘윤회003’은 양림산 선교사 묘역에서 수집한 자연물의 흔적과 두달간의 레지던시 생활의 흔적들을 만찬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근대 역사거리인 양림동 일대와 과거 선교사 사택 및 창고였던 전시 장소와 역사성과 교유성에 집중, 관련 장소들을 직접 탐색하고 살펴보는 작업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245개의 헬기 사격 탄흔을 연상케 하는 ‘불구부정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전일빌딩245를 다녀온 그는 이후 평범한 갤러리 벽의 못 자국과 숭숭 뚫린 구멍들 속에서 245발의 탄흔을 보게 되고, 머리카락을 통해 새로운 탄흔의 모습을 재창조하는 등 타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주의 아픔을 조명한다.

한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완전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몸으로부터 버려지고 소멸하는 머리카락을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축을 옮겨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