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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소꿉놀이
한규빈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4. 03.19(화) 16:22
한규빈 기자
소꿉놀이. 국어사전의 정의는 ‘소꿉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놀이’다. ‘소꿉’은 아이들이 살림살이하는 흉내를 내며 놀 때 쓰는 자질구레한 그릇 따위의 장난감이다.

세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무르며 굴욕을 당한 여자프로배구 막내 구단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를 지켜보면 이 팀의 존재 이유가 구단주인 장매튜 페퍼저축은행 대표이사의 소꿉놀이 용도에 그친다고 느껴진다.

페퍼저축은행은 창단 첫해인 2021-2022시즌부터 2023-2024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3승-5승-5승에 그치며 올 시즌 우승 팀인 현대건설 힐스테이트(26승 10패)의 절반에 그치는 승수를 쌓아왔다.

페퍼저축은행의 구단 운영을 돌아보면 감독 선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고, FA(자유 계약) 영입 과정에서 보호 선수 명단을 엉뚱하게 작성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실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장매튜 구단주에게는 위기의식이 없다고 느껴진다.

첫째, 장매튜 구단주는 경기가 종료된 후 선수들이 빠져나간 코트에서 공놀이를 즐긴다. 본인이 구단주를 맡은 팀이 두 자릿수 연패에 빠지며 팬심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김없었다.

몇몇 경기에서는 지인들이 함께 코트로 들어가 리시브와 디그, 토스를 하는 등 공놀이를 즐기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연출됐고, 대행사와 경호 인력들이 공을 주우러 다녔다. 패배에 대한 분함은 그의 표정에서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둘째, 장매튜 구단주는 경기장에서 음주를 즐긴다. 페퍼스타디움에 도착하면 VIP실로 이동해 술을 마신 뒤 경기가 시작하기 전 VIP석에 착석한다. VIP실은 기자실 이동 동선에 위치하는데 장 구단주가 경기장에서 음주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여러 차례다.

올 시즌 마지막 경기 종료 후에는 술 냄새가 진하게 나는 상태에서 코트로 내려가 선수들을 격려했다. 팀의 책임자인 구단주가 술 냄새를 풍기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만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장 구단주는 이 상태로 마이크를 잡고 팬들 앞에 서기도 했다.

셋째, 장매튜 구단주는 경기장에 노모를 동반한다. 올 시즌 페퍼저축은행의 VIP석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령 여성 두 명이 자주 자리했다. 구단이 준비한 도시락을 먹기도 했고 경호 인력들이 이들을 부축하기도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장 구단주의 모친이었다. 장 구단주의 모친이 아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나 경기가 종료된 후 함께 코트로 내려가는 것은 상식 밖의 모습이었다. 특히 일부 선수들이 거동이 불편해 코트 밖에 서있는 장 구단주의 모친을 찾아가 인사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모습으로 팀을 사실상 장난감으로 만든 장매튜 구단주는 시즌 최종전이 종료된 후 팬들 앞에서 차기 감독 선임을 빠르게 마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장 구단주가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재창단에 버금가는 각오가 없다면 내년에도 같은 행태가 반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