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탁인석>햄릿성에서 비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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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 에세이·탁인석>햄릿성에서 비를 맞다
탁인석 에세이스트
  • 입력 : 2024. 02.22(목) 14:17
탁인석 에세이스트
햄릿성은 문학에 조금만 관심을 두어도 귀에 익숙한데 햄릿성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햄릿성을 보기위해 그 먼 거리를 비행기와 버스를 번갈아가며 찾아오곤 한다. 그것도 칙칙한 비를 맞아가며 세익스피어 ‘햄릿’에서 햄릿성의 유령이 지금도 그 같은 환상을 현대의 관광객들이 밑도 끝도 없이 부풀려가며 햄릿성을 보러 오는 것이다.

꿈에 그리던 유럽,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의외로 쉽게 접근 못하는 인어공주의 나라 덴마크를 방문했다. 덴마크 하면 먼저 달가스가 생각나고 풍차가 생각나고 그림 같은 집이 생각나는 나라이다. 그리고 전설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불후의 명작을 남긴 나라이기도 하다. 수도 코펜하겐에 착륙하면서부터 내 가슴은 못내 설레였다. 안데르센만 하더라도 코펜하겐 시청 앞에 근사한 동상으로 서 있고. 덴마크를 찾는 관광객이면 너나없이 첫 선물 같은 첫인사로 맞이하고 있다.

코펜하겐은 안데르센 동상을 중심으로 푸르스름하게 산화된 중세의 구리지붕(흔히 ‘green city’로 불리는)의 거리와 많은 공원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깨끗한 거리, 궁전을 비롯한 역사적인 많은 건물들, 미술관, 박물관 등은 중세풍과 현대풍이 함께하고 있었다. 코펜하겐은 번화가, 식당가, 호텔가, 학생가, 서점가, 상점가, 주택가 등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거리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중세의 거리엔 차가 다닐 수 없어서 더더욱 매력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중세풍의 풍경을 한 눈에 보여주는 도시도 도시지만 사람들 가슴마다 꿈처럼 불 켜진 문학성이 덴마크를 이리 매력적인 나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안데르센의 작품은 성경다음으로 많이 읽힌다고 한다. 손재주 없는 안데르센은 14살 때 지방에서 수도 코펜하겐으로 상경하였고 노래를 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때의 재능이 평가되어 장학금을 받고 이태리에서 본격 공부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무렵부터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기 시작한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등이 태어난 것이다. 안데르센 작품으로 당시까지 문어체이던 문학작품들이 구어체가 되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얘기하려는 것은 인어공주상이다. 불과하면 80㎝ 정도의 조그마한 구리 조각상, 그것도 코펜하겐 바닷가 평범한 돌 위에 앉혀진 그 인어공주상을 배경으로 사진 한번 찍자고 세계의 관광객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2시간 3시간을 대기하는 모습은 매우 부러운 광경이었다. 이제는 인어상이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었지만 이 동상은 안데르센의 작품 ‘인어공주’에서 영감을 얻어 1913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이 작품상은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와 함께 유럽의 3대 썰렁 명소로도 유명하다.

내친김에 덴마크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라 불리는 프레데릭스보르성을 관광하고 30분 거리에 있는 세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의 배경이 된 크롬버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덴마크까지 왔는데 명색이 영문학을 공부하는 처지에서 어찌 이들을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크롬버성은 지구촌의 누구에게나 익숙한 햄릿성이라 부르는 것이 더 편할듯하다. 이 성은 웅장하지만 비어있는 상태이다. 지금도 햄릿에서처럼 가끔씩 유령이 나타난다고 하며 세익스피어는 생전에 이 성을 찾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인류 최대의 천재 세익스피어는 12세기에 유틸랜드반도의 역사학자 삭소(Saxo)가 햄릿왕자를 기록했음을 알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세익스피어의 상상력이 불후의 명작을 창작한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의 배경이 크롬버성일 것이라고 후세는 추측들을 하는 것이다. 작품의 배경이 우울한 것은 이곳 날씨와 무관하지가 않다는 것이고 그날의 날씨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이드도 이곳은 비가 떨어지고 그치기를 반복하는 날이 많다는 설명을 들려주었다. 덴마크는 우산도 귀하지만 우산을 쓰기도 어중간하여 비를 맞아가며 구경하는 것이 더욱 운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햄릿성에서 비를 맞는 기분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저 멀리 바다 건너에는 덴마크의 옛 땅인 스웨덴이 보이고, 작품처럼 성루가 있거나 순찰하는 성의 모습은 아니지만 햄릿이 실제로 활동했을 거라는 상상 하나로 세계적 명소가 된 크롬버성, 햄릿을 아는 이라면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다. 햄릿성은 일 년 내내 오락가락 비가 내린다 하고 그날따라 더 많은 비를 맞아가며 텅 빈 유령성을 몇 번이고 배회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