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만남과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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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만남과 헤어짐
임효경 완도중 교장
  • 입력 : 2024. 02.14(수) 12:53
임효경 교장
2월 졸업식을 앞두고 개학을 했다. 오늘 아침 등굣길 걸어오면서 깜짝 놀랐다. 봄을 재촉하는 비를 맞고 피어 있는 홍매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학교 오는 길가, 정갈한 양옥집 화단 구석에 여러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 피어 있었다. 이번 겨울 청해진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과 눈비 맞고 견디며 저렇게 붉은 꽃을 피우다니 한참을 감탄하며 보고 왔다. 저 여린 꽃잎이 저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나온 것을 생각하니 참 눈물겨웠다. 어리고 여렸던 우리 학생들이 3년간 수많은 어려움 속을 거쳐 부단히 성장하고 변화해 온 족적(足跡)들이 이 홍매화랑 닮아 보이는 아침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중학 생활 중 무엇이 가장 좋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학생들은 단연 급식이 제일 좋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최고였다고, 훌륭한 가르침을 주셔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이었다고 답한다. 특히 축구를 맘껏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자기들이 주축이 되었던 축구팀이 2023년 학교 스포츠클럽 대항전에서 전남 우승을 거머쥐었던 기억이 소중하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 그냥 즐거운 일만 있었겠는가? 그래도 다 잘 이겨내고 견디고 여기까지 온 그들이 빨갛게 피어난 홍매화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2023년 졸업을 맞이하는 우리 3학년들은 참 힘든 중학교 생활을 해 왔다. 2021년 입학식은 코로나19 초미의 사태 때문에 조용히 쓸쓸하게 맞이해야 했다. 마스크 쓰고 선생님 만나고, 온라인 수업 듣다 보니 수업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져서 학력은 바닥을 쳤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이 알파벳도 떼지 못하는 등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가 급증했다. 학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학생들 자신,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도 힘들었다. 그래도 다 이겨냈고, 마침내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았으니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격한 축하를 보낸다.

어제는 특별한 프로그램에 대한 학교장 허락을 했다. 졸업생 중 한 아이가 후배들에게 자신의 공부법을 전수해 주고 싶다고 했다. 계획서까지 제출한다. ‘전교 1등의 공부법’ 리는 제목이 거창하다. 3시간 분량의 계획이 아주 철저하게 보인다.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어려움 없이 일상생활 속에 즐겁게 공부하는 법, 90점 넘기는 시험 대비법, 수행평가 등 내신 관리법,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 방법 및 방학 계획 세우기까지 아주 치밀하고 세세한 자신만의 공부법이 들어있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공부를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학교 입학할 때는 모든 과목이 형편없는 하위 수준의 성적이었다. 어느 순간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루하루 학습계획을 세워 실행해 나갔다. 학원 수강하지 않고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결국은 3학년이 되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수석을 차지한 학생이었다. 대단하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중학교 3학년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하겠다고? 그 옛날 나의 중학교 3학년 수준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취지를 설명하고 신청자를 받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여 명의 후배들에게 3시간의 강의(?)를 훌륭하게 마친 것을 보았다. 청출어람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덕분이다.

지난 1월 초 방학하는 날, 제주도 2박 3일 교직원 연수를 했다. 중학교의 빠듯한 예산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연수이지만 완도이니까, 우리 선생님들이니까 가능했다. 우선 제주도까지 가는 시간과 비용이 덜 든다. 완도항에서 페리호를 타고 3시간이면 제주항에 도착하고 왕복 6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선생님들 마음을 넓고 크게 쓴 것이다. 주변 학교 선생님들이 어떻게 그런 연수가 가능하냐? 놀라며 부러워했다. 방학 기간을 반납하고 30여 명의 젊은 선생님들이 자기 비용까지 각출해서 2박 3일 제주도 연수를 떠났다고? 대단하다고들 했다. 우리 선생님들의 열정은 가히 칭찬받을 만하다.

교내 체육대회 날 학생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응원하며 더 신나게 춤추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선생님들이다. 12월 학교 축제 ‘청송제’에서 신규 1년 차 교사 전문적학습공동체 ‘슬기로운 교사 생활’ 7명의 선생님들이 밴드를 결성해서 마침내 무대에 섰고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는 열정을 보였다. 조이의 ‘안녕’이었다. 학생들의 그 뜨거운 반응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졸업식을 이틀 남겨 놓은 날, 학생들과 마무리 추억 쌓기를 하겠다고 방과 후 사제동행 운동 후 학년 단합 대회를 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요청하러 오는 선생님들이다. 난 긴가민가 그들의 눈을 바라본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이내 느끼고 참 마음이 따뜻해지며, 우리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예산도 없이 어떻게 하는 것이냐? 걱정스럽게 묻는다. 학교 축제 중 학급 부스를 운영하여 남긴 이윤들이 있단다. 라면과 떡볶이 포장마차와 완도중 까페가 꽤 인기가 있었고 매출이 상당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이런 선생님들 보고 공부하니 또 그러한 학생이 나온 것 아니겠는가?

회자정리(會者定離). 사람은 누구나 만나면 헤어진다는 그 만고의 진리 앞에 내가 무슨 수를 쓸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밝고 활기차고 매력적인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니 아쉬움과 슬픔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다. 다만 나는 바랄 뿐이다. 더 넓고 높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좋은 일들만 있지 않을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꿈과 희망을 놓지 않기를,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의 아픔과 고난이기를 기도한다. 힘들고 어렵더라고 잘 이겨내고 견뎌내어서 남다른 근육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로, 20년, 30년 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완도의 미래 세대로 거듭나기를 난 뒤에서 지켜보며 기다려 볼 것이다.

세상에 양과 음, 밝음과 어두움, 탄생과 죽음이 있고 나는 이제 만남과 헤어짐 앞에 서 있다. 나는 이 헤어짐 앞에서 겸손하게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순응(順應)해야 한다. 거기서 또 배운다. 결국은 활기차고 다정한 것들이 우리 기억 속에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배운다. 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친절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