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Yes We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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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Yes We Can
곽지혜 취재1부 기자
  • 입력 : 2024. 01.24(수) 12:12
곽지혜 기자
“Yes We Can.”

16년 전, 버락 오바마라는 연방 상원의원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만든 선거 구호다. 평가는 엇갈릴지언정 2008년의 오바마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가진 위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을 화합으로 이끈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대선을 앞두고 보수 강세 지역인 미주리주를 찾은 오바마는 수만여명의 대학생과 함께 “Yes We Can”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미주리주에서 그가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것은 희망과 미래, 에너지였다. 오바마는 결국 미주리주에서 0.13%라는 미미한 차이로 패배했지만, 전체 선거인단에서 압승했다. 그는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끓어오르게 했으며 “우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구호는 민주주의 최대 축제인 선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구호로 인정받고 있다. 2008년 대선을 치르며 미국인들이 느꼈을 설렘이 부러울 따름이다.

투표권이 생긴 이후 부모님은 선거일이면 나들이를 가더라도 일찍이 집 앞 초등학교를 찾아 반드시 투표를 하게 하고 외출을 했다. 타지로 진학한 후에도 선거일이면 투표도 할 겸 부모님도 뵐 겸 고향으로 향했다. 손쉽게 답이 정해지는 투표도 있었고, 최선보단 차악을 뽑자는 마음으로 행했던 투표도 있었지만,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투표를 하기가 망설여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경쟁자를 설득하고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치인에 환호한다면 반대로 우리는 자기감정을 분출하고 저급하고 폭력적인 말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정치인에 피로감과 상실감을 느낀다. 아마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던 투표를 망설인 순간은 그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였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Yes We Can”의 설렘은 고사하고 온갖 논란과 위법, 파문으로 점철된 지난 대선 이후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진 점이 있는지 찾아볼 수 없다. 상대 후보와 진영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저주는 선거의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리 승자와 패자가 있는 싸움이라지만, 각종 추문과 비방으로 상대 진영을 깎아내리는 후보들의 모습은 이제 차악을 찾기도 버거운 지경이다.

2008년 미국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존재했다. 승자는 오바마였고 패자는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이다. 두 사람은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선거를 앞두고 열린 한 연설집회에서의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 현장에서 매케인은 오바마가 무슬림이라고 비난하는 한 지지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아니다, 그는 훌륭한 시민이고 지금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 후보가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매케인은 당시 여론조사에서 자신보다 앞서있던 후보를 인종 문제로 공격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해 역전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뒤처지던 그가 택한 것은 네거티브가 아닌 존중이었다. 혹자는 그 순간을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꼽기도 한다. 그로부터 10년 뒤 오바마는 매케인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읊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도덕성을 갖고 정치에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항상 옳지 않아도, 실수를 범하더라도 나라와 지역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품위를 지켜주길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국민들은 정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Yes We Can. 우리도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