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그리운 ‘김대중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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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그리운 ‘김대중 정신’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4. 01.04(목) 17:05
이용환 논설실장
“소수가 지배하고 소수가 영욕을 누리던 반대중적 현상을 일소하고 희망에 찬 대중의 70년대를 열겠다.” 1970년 1월 24일, 45세의 3선 의원 김대중이 대한민국 7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40대의 신선한 힘으로 박정희가 노리는 3선 개헌을 저지하고 무력감에 빠진 야권을 되살리겠다는 이른바 ‘40대 기수론’이었다. 유진산 당수 등 당시 신민당 수뇌부 뿐만 아니라 경쟁자였던 박정희 조차도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김대중은 그 해 4월 27일 치러진 선거에서 521만 표를 얻으며 박정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1924년 1월 6일.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대중 선생은 2009년 8월, 서거할 때까지 파란만장한 한반도의 현대사를 치열하게 살아왔다. 30여 년에 걸친 군사 정권 시절 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숱한 투옥과 망명 연금을 당하고, 5차례나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인권과 평화를 향한 선생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고 희망도 잃지 않았다. 역사 발전과 국민에 대한 신념도 강했다.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자서전에서도 선생은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습니다’고 썼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새 길도 열었다. 정부수립 50년 만의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선생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정지표로 삼고 과감한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성명을 이끌기도 했다. 50여 년 이어진 남·북간 불신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의 장을 여는 데 기여한 공로로 2000년에는 한국 최초로 노벨평화상도 수상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이런 선생을 두고 ‘독보적인 정치인이면서 사상가로서 민주주의 원칙에 헌신했던 그야말로 특별한 운명을 가진 한 인간’이라고 했다.

6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선생은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갖은 탄압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대통령에 오른 뒤에도 자신을 탄압하고 모욕했던 이들을 용서했다. 도덕성이 사라지고 상식과 원칙을 찾아보기 힘든 정치권, 신념은커녕 책임마저 내팽개친 부끄러운 사회, 반성과 성찰 대신 천박함이 난무하는 세태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지금, 선생이 보여줬던 정신과 발자취가 더욱 그립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