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새출발’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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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새출발’의 희망
곽지혜 취재1부 기자
  • 입력 : 2024. 01.03(수) 13:41
곽지혜 기자
흔히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코로나19를 겪으며 자영업자들은 이 말에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단다. 노력도 나를 배신할 수 있는 세상이구나. 남들과는 다를 거라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믿어왔지만 나라고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구나.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고 한다. 지난해 봄, 3년4개월 만에 관련 규제들이 해제되고 대부분의 실내 공간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게 되면서 코로나19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날인 12월31일에는 언제까지나 길게 줄을 서 있을 것만 같았던 전국의 선별진료소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했던 만큼이나 우리는 빠른 속도로 엔데믹에 적응했고 밤 10시면 문을 연 카페와 술집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일 따위는 어느새 기억 속에 희미해졌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마지막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를 맞았다. 하지만 그 생채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누구보다 노력했지만, 파도에 휩쓸리듯 스러져간 자영업자들은 지난 3년여간 늘어난 부채에 오늘도 허덕이고 있다. A씨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신조 아래 무던히도 애를 썼다. 11시, 10시, 9시 계속 줄어가는 영업시간에 출근길 손님들이라도 노려보려 카페 오픈 시간을 오전 6시로 앞당겨 보기도 하고, 동업자가 모든 책임을 버리고 보증금을 빼서 떠날 때도 끝까지 스스로를 믿고 카페를 지켜보려 했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그 끝에는 수억원의 부채만이 남았다. 개인의 노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영락없이 신용불량자가 되겠구나 좌절했던 A씨는 지난해 새출발기금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광주에서만 새출발기금의 도움을 통해 대출 원금을 감면받거나 상환 일정을 조정하는 등 혜택을 본 자영업자들이 500명을 넘겼다. 갈수록 늘어가는 신청자에 금융당국은 새출발기금 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등 더 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했지만, 정작 관련 예산은 반토막나며 추가적인 예산 지원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달 전 태어난 아이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A씨는 여전히 매월 빠듯한 살림에 남은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좌절감보다는 희망이 가득해 보였다. 갓난쟁이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있음에도 아이가 순해서 틈틈이 공부도 할 수 있다며 환하게 웃는 A씨의 모습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국가 복지·지원 정책에 대한 존재의 이유를 실감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A씨와 같이 희망을 되찾은 사람들 보다는 절망 속에서 발을 내딛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자신의 노력마저 배신당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선행’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가 가진 ‘의무’의 영역이다. 힘차게 밝아온 갑진년 새해에는 더 많은 이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