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지금, 다시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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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지금, 다시 쇼펜하우어
양가람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3. 12.27(수) 13:00
양가람 기자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가 2023년 말 한국에서 유명세를 끌고 있다.

교보문고가 8일 발표한 12월 첫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종합 1위를 유지했다. 작가는 쇼펜하우어의 목소리를 빌려 ‘인생이 고통임을 인정하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진 가짜 행복 대신 자신만의 진짜 행복을 위해 새롭게 거듭나는 고통을 겪어라’라는 조언을 한다.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쇼펜하우어의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1851년 출간)도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다.

염세주의의 안경을 낀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베일 만치 날카로운 언어로 써내려간 저서들에 ‘인생은 고통’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은 끝없이 욕망하는 존재이자, 만족될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한 끝없는 고통에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또 인간에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타인에게서 위안을 찾고자 하지만, 타인은 또 다른 아픔을 가져다줄 뿐이다. 즉, 인간은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타자들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인생 그리고 타인은 고통”이라 외치는 쇼펜하우어에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생망’들에게 쇼펜하우어는 단순 염세주의나 허무주의 철학자가 아니다. SNS나 미디어 등을 통해 접하는 타인의 삶은 끝없는 비교를 불러와 자신의 삶을 비루해 보이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 대신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 후에야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의 영향을 받은 쇼펜하우어는 도덕을 통한 해탈, 즉 동정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동정은 동고(同苦, Mitleid)로 번역되는데, 타인의 고통을 자신과 무관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 삶의 고통을 함께 이겨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철학이 현대에 던지는 울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쇼펜하우어의 대표적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그는 “세계는 자기 의지의 표상”이라고 밝혔다. 검은 토끼의 해가 저물고 청룡의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시점에서 다시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읊어본다. “나는 내 의지대로 된다(Ich kann tun, was ich 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