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이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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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이름값
김성수 논설위원
  • 입력 : 2023. 12.26(화) 16:34
김성수 논설위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다. 국화나 구절초처럼 이름을 알면 화초지만 이름을 모르면 잡초이듯 이름은 자신을 밝히는 표징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하늘은 녹(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 했다.

최근 선거를 앞둔 정치판을 보자면 ‘이름값’을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이다. 태어나면서 훈장처럼 달고 나온 이름은 온데 간데 없고 ‘이재명’ 이름을 한줄 넣느냐 안 넣느냐를 놓고 호들갑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전남에선 입지자들의 현수막에 자신의 이름보다 ‘이재명 대표’와 연관된 경력을 더 크게 강조하고 있다. 향후 예정된 당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는 전략 때문이다. 이 대표에 대한 지지도가 워낙 높은 게 이유라면 이유다.

과거를 거슬러 봐도 그렇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대통령 팔이’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온 선거가 아니라 대통령 마케팅으로 국회에 줄줄이 입성했다.

아무리 ‘당선’을 목표로 한다지만 22대 총선에서도 선의의 경쟁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재명 경력’ 한줄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가 신뢰성을 잃고 있다. 민주당도 이같은 문제 때문에 당내 경선 시 경력에 이재명 대표와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등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대통령·당대표 마케팅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총선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청와대 근무를 ‘경력쌓기용’ 수단으로 까지 삼고 있다. 대통령과 대권주자와의 인연을 부각하면 표심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권력층인 정치인들이 이름값을 못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다.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아닌 권력자의 이름을 빌려 금뱃지를 쫓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이런 예비후보들이 당선 후에도 과연 제대로 ‘국민 대변자’로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회의원의 꿈을 품고 선거에 나서는 예비후보라면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