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송영길의 몰락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송영길의 몰락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12.21(목) 17:01
이용환 논설실장
1996년 겨울 어느 날,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작은 술집 ‘동숭동에서’가 문을 열었다. 주인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 당시 사법연수원생과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이정우 변호사 등 200여 명. 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80만 원에서 최고 300만 원까지 공동으로 출자한 가게였다. 주로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공동의 목표, 어느 덧 ‘낀세대’가 된 30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경영을 전담했던 황도준의 설명이다.

고흥에서 태어난 송영길의 꿈은 ‘세상을 바꾸는 정치’였다. 30대의 나이, 80년대 대학을 다녔고 60년대에 태어난 386세대.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도 1980년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에 온몸으로 항거하는 것이었다. 영화 ‘서울의 봄’에 묘사된 것처럼 ‘화염병’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도덕적 가치도 지켜냈다. 송영길도 1984년 연세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화염병을 들며 반정부시위로 구속되는 등 민주화운동에 자신을 바쳤다. 경찰의 수배를 피해 도피생활을 하던 그에게 1계급 특진과 500만 원의 현상금까지 걸릴 정도였다.

정치권에서의 경력도 화려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송영길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 참여했고, 2004년 17대 총선 이후에는 개혁세력의 선두주자로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끌었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는 386세대가 줄줄이 낙선하는 상황에서 3선에 성공했다. 5선 국회의원과 민선 5기 인천시장, 제5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도 역임했다. 그야말로 광주·전남을 이끌어갈 차세대 정치인이면서 유력한 대권주자의 한사람이었다.

‘돈봉투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결국 구속됐다.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당내 금품 살포 등이 그가 받는 혐의들이다. 송영길은 문재인 정권에서 핵심 요직을 장악했던 386세대의 맏형이면서 지난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저항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했던 대표 주자였다.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따르는 후배도 많았다. 욕심 때문이었을까. 30대, 동숭동에서 맥주잔을 기울일 때면 ‘세상을 바꾸는 정치를 하고 싶다’며 격정을 토로했던 송영길. 그의 몰락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