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다시 '서울의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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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서석대>다시 '서울의 봄'을 기다리며
박간재 취재2부 선임부장
  • 입력 : 2023. 12.17(일) 12:43
박간재 취재2부 선임부장
“공산당이 국회의사당에 불을 지른 게 확실합니다.”

1933년 2월. 독일 의사당에 의문의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히틀러 총리는 “공산당이 불을 질렀다”며 괴벨스 등과 공산당사를 습격했다. 대통령 힌덴부르크를 찾아가 담판에 나섰다. “공산주의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불을 질렀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겁에 질린 힌덴부르크는 히틀러에게 시국을 수습하라며 대통령 전권을 넘겨줬다. 대통령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대신 무력하게 권한을 이양하고 말았다. 이 때부터 히틀러는 의회를 통하지 않고도 나찌의 결정만으로도 법을 통과시키는 권한을 갖게 됐다. 비상대권을 거머쥔 것. 전권을 넘겨주는 무능한 대통령 탓에 절대 권력 히틀러에게 파시즘으로 가는 결정적 길을 터주고 말았다. 당시 나찌당 지지율이 40% 미만으로 1당 이었지만 과반을 넘지 못하던 때였다.권력을 휘두를 수 없던 히틀러는 30% 중반대 낮은 지지율을 돌파하기 위해 꺼내 든 카드가 공산주의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은 장면 아닌가.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면 유사한 사례가 우리에게도 있다. 1979년 12·12 사태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나온다. 영화 속 일개 투스타인 전두광은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게엄사령관 연행을 재가하라고 다그친다. 대통령이 거부했지만 결국 재가하면서 쿠데타를 용인하고 만다.

10월26일 박정희 시해사건으로 유신정권이 종말을 고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합동수사본부장이라는 자리를 활용했다. 17년 독재정권이 끝나자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올 것으로 기대 했지만 12월12일 쿠데타를 감행한 전두환이라는 새로운 군부 독재자가 등장하며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난 뒤 끓어오르는 분노는 단 하나. 한국민주주의가 소수의 하나회 장교들의 쿠데타 조차 막지 못할만큼 견고하지 못했다는 데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쿠데타 이후 40여년이 지난 현재도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히틀러가 불법을 저질러도, 전두환이 총칼로 만행에도 냉철한 질타 대신 그 안에 안주하며 동조했던 국민들의 나약한 보신주의도 화를 키운 요인이다. 현 정부 무능에도 국민들만 분노할 뿐 여야 정치인들은 내년 총선에만 눈독 들이는 양상이다.

80년 민주주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감이 부풀었다가 실패한 그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어느 페친의 글이 가슴을 울린다. ‘발의 목을 잡지 않고 손의 목을 잡으면 얼마나 좋을까/두런두런 험담하지 않고 옹기종기 덕담하면 얼마나 좋을까/좋은 공동체란 손목 맞잡고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던 곳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