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견리망의'(見利忘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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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견리망의'(見利忘義)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3. 12.10(일) 16:37
최도철 국장
연말이다. ‘본인 사망 외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송년모임 소식도 올라오고, 연락 뜸했던 지인들도 해넘기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전갈을 보내온다.

이맘때가 되면 '대한민국 한문 공부시간’도 어김없이 돌아온다. 2001년 이후 교수신문이 연말 기획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면서 등장한 풍속도이다. 교수들은 공모를 통해 그 해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언론은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긴 촌철살인의 의미를 적확하게 풀어 내보낸다.

이런 전통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가까운 일본은 ‘올해의 한자’를 매년 발표한다. 독일은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를 독일어학회에서 선정하고, 미국 방언협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식의 ‘올해의 핵심단어’를 내놓는다.

교수신문은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로 견리망의, 남우충수, 도탄지고, 적반하장, 제설분분 등 5개를 선정했다.

제설분분(諸說紛紛)은 여러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도탄지고(塗炭之苦)는 진흙 수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듯한 큰 고통이란 뜻으로,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남우충수(濫芋充數)는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들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운다는 뜻이다. 무능한 사람이 능력 있는 척 하거나 실력이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마지막 견리망의(見利忘義)는 ‘눈앞의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비틀어 풍자한 패러디(Parody)이다.

극단의 견리망의가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은 2023년 대한민국 사회상을 날카롭게 꿰뚫은 것이다.

필자가 선자(選者)라면 1년 내내 쌈박질만 하다 허송세월한 정치판과, 국정의 난맥상을 보건대, 아무래도 사이비 악사가 판을 치는 ‘남우충수’로 기울 것 같은데, 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견리망의’가 가장 많았다.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옮긴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인 2021년 ‘묘서동처’(猫鼠同處),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2022년 ‘과이불개’((過而不改)에 이어, 올해의 사자성어는 ‘이익에 눈 멀어 가치와 정의를 상실한 세상 풍조’를 비판한 견리망의(見利忘義)로 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