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 시대서 동물복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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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용 시대서 동물복지를 말하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손서영 | 린틴틴 | 1만6000원
  • 입력 : 2023. 10.12(목) 17:1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3 개식용 종식 촉구 국민대집회에서 동물해방물결을 비롯한 동물권 단체 회원들이 개식용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유일하게 개를 먹는 나라 한국. 2021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를 출범해 사회적 논의에 나섰으나 개점휴업 상태다. 정권이 교체되고 올해 3월 이후 회의를 연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 이 때문에 최근 국정감사에서 ‘개 식용’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개 식용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국격도 있고, 동물복지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사실 종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의 이름을 딴 ‘개 식용 금지법’도 국회에 발의된 상황에다가 김 여사 또한 제대로 먹지 못해 일명 ‘갈비 사자’라는 별칭을 얻은 숫사자를 관리하고 있는 청주동물원에 최근 방문하면서 동물복지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게 될지 주목된다. 한국에서 동물복지는 가능한 일일까? 어느 수의사의 동물복지 일상이 눈길을 끈다.

숲속에서 여러 동물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동물 복지 수의사 손서영의 첫 책이 린틴틴에서나왔다. 영국에서 동물 복지를 공부하고 돌아온 저자는 함께하는 3마리 개가 도시 생활에 불행해하는 걸 발견한다. 서울에서 수의사로 ‘성공’만을 쫓던 그는 고심 끝에 시골로 잠시 내려간다.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32마리 유기견과 7마리 길고양이, 그리고 숲속 동물병원 수의사의 행복 생활을 담았다. 사람도 동물도 언젠가는 죽기에, ‘사는 동안’ 행복한 삶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담담한 글과 웃음 나는 동물 일상 사진, 정돈된 그림으로 들려준다. 동물복지는 어쩌면 살아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동물 복지의 중요한 주제어이기도 하다. 사람이 동물을 이용하되, 동물이 사는 동안만큼은 행복과 복지를 보장하는 것이다. 동물이 함부로 버려지지 않고, 학대받지 않고,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일. 이제 이런 동물 복지의 개념과 가치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밥과 물을 주고, 배변을 치우고, 놀아주고, 추우나 더우나 함께 산책하고, 늘 사랑하고. 날마다 반복되는 이 모든 반려 활동, 역시 쉽지 않다. 무엇보다 폐기물 비닐봉지에 아무렇게나 담긴 강아지를 직시해야 하는 안락사 현장은 고통 그 자체다.

하지만 그렇게 숲속에서 하루하루, 아이들을 돌보고, 아침, 저녁, 함께 산책하면서 그들이 자연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 덤으로 긴 유학 생활과 빡빡한 서울 생활로 지친 몸과 마음도 보듬으며, 별일 없고 고요하지만 바쁜(?) 시골 일상을 살아간다. 서울에서의 화려하고 안전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은 점점 멀어져가고, 근처 유기 동물 보호소에 봉사를 다니면서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는, 철창에 갇힌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식구가 점점 늘어간다. 그 아이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저자는 직접 공부한 여러 철학자들의 동물복지론도 친절히 설명한다.

어느새 32마리 개와 7마리 고양이가 함께하는 대가족. 말썽꾸러기뿐이라 돌아서면 할 일, 돌아서면 할 일인 반려 생활이지만, 손서영 수의사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숲속 과수원 근처에 작은 동물병원도 열었다. 사는 동안 행복한 삶. 동물이든 사람이든 정답이 하나뿐인 건 아니겠지만, 한 번쯤 내 삶을, 행복을 돌아보게 하는 담담한 글과 웃음 나는 시골 일상 사진, 깔끔한 검은 선의 동물들 그림이 우리의 마음을 만진다. 언제나 말없이 안아주는 자연처럼.
사는 동안 행복하게.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