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임효경>청해진에서 보내는 교육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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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임효경>청해진에서 보내는 교육 편지
임효경 완도중학교 교장
  • 입력 : 2023. 09.10(일) 14:20
임효경 교장
나는 35년 교사, 3.6년 교감, 마지막 1.6년 교장직을 완도에서 수행하고 있는 여교장이다. 근심어린 관심으로 학교는 괜찮은거냐고 물어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요즘이다. 아니나 다를까 슬프고 비참한 심정으로 여름방학을 지냈다. 지난 38년 동안, 이렇게 무기력한 방학을 보낸 적이 없었다. 방학을 앞두고 서울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극단적 선택은 큰 충격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으면, 곧 방학이건만, 그런 선택을 했을까?

돌아보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과거에 거름으로 유용하게 쓰이던 변(便)도 선생의 것은 쓰지 말라 했다. 학생들 때문에 고심하고 고민하는 교육자들의 소화 장기가 온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교사들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로부터도 시달리니, 그 부담이 과중한 것이 현실이다.

사람이 일을 하는데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고 본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가뿐하면 살아가는 힘을 얻고, 마음이 힘들 때도 몸이 좀 쉬면 또 기운을 내게 되는 것이다. 교사는 3월에 시작하여 7월까지 1학기 내내 몸은 힘들지만 까만 눈을 별처럼 빛내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교실의 어린 학생들이 주는 마음의 위안이 있어서 버틴다. 그러다가 몸이 힘들다 싶으면 어느새 방학이 찾아와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갖는다. 방학이 끝나갈 때가 되면 내 몸이 반응을 한다. 아~~ 애들 보고싶다. 교실에서 그 웃는 얼굴들 만나보고 싶다. 나를 힘들게 했던 아이들에 대한 원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리움이 솟아나는 것이다. 그렇게 저렇게 이 긴 세월을 버.텼.다.

나는 두 남자아이를 둔 워킹 맘으로 먹고 살아가는 생활인의 모습이든, 교육이라는 백년지대계를 짊어지고 가는 선도자의 모습이든 양면을 잘 다스려가며 교사 생활을 해 왔었다. 그럴 수 있도록 학생과 학교와 학부모가 삶과 교육의 두 경계를 인정해 주고 뚜렷하게 구분지어 주고 존중해 주어서 가능하였던 것 같다. 지금은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문제이다. 요즈음 학교는 지식과 지혜의 습득의 장(場), 존중과 협력을 배우는 공동체로서 역할보다는 돌봄과 훈육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능을 더 많이 하여야 한다. 지식 습득은 ‘어차피 학원에서’ 하는 것이니 학교는 시험을 보이고 학생들의 성적의 서열을 매기는 기능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교사는 존중과 배려를 받아야 다시 힘을 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정말 예민한 감정 노동자이다. 중2 때 L생물선생님을 우리는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생물이 좋은 성적 내기 어렵고 까다로운 용어 가득한 과목이라고 여기는 우리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주셨다. 살아있는 것들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며 다양한 세포를 칠판 가득 그림을 그리셨는데, 그 그림 솜씨가 정말 뛰어나 어린 내 눈에 존경과 신뢰를 담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45분 동안 어린 우리들의 눈을 열어주시고, 까막눈이 깨닫고 반짝거리게 만드는 마법의 세계로 이끄시는 분이셨다. 우리가 선생님을 사모하니, 선생님도 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이 가득한 교실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셨던 것 아닐까? 우리 서로 도왔던 것 아닐까? 선생님들의 당당한 모습들이 어린 내 눈에 소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나 또한 교직에 자연스럽게 몸을 담게 된 것 아닐까?

교사의 꿈을 꾸고 다사다난한 과정을 다 통과하여 드디어 임용이 되었을 때 가졌던 어린 교사들의 기대와 희망이 스러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교사가 당당하고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해지는 것인데 말이다. 참 걱정이다. 교육이 이렇게 힘들어지면 누가 공부에 힘써서 교육의 길로 들어서려 하겠는가? 우리나라가 가진 최고의 자원이 사람인데, 사람이 답인데, 다음 사람을 길러 낼 지금 사람이 어디에서 올까? 부모님들도 바로 눈 앞의 현상만 바라보고, 내 자식의 안위만 생각하여 선생님을 힘들게 하기 보다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모두에게 공정한 세상을 위해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서, 양보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학교와 교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개학을 했다. 완도 청해진 앞바다의 바람을 가르고 기슭을 오르며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한다. 학생들 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오고 방학 중 폭풍 성장하여 나보다 더 키가 큰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조용하던 학교가 방학으로 쉼을 누린 학생들과 20대와 30대 상큼한 신규 선생님들로 활기가 넘치니 좋다. 방과 후 청해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넓은 운동장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엉겨 우중(雨中) 축구를 하고 있다. 9월에 있을 교육감배 스포츠 클럽 대회 우승을 목표로 작은 공 하나에 집중하여 열심히 달린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근심과 걱정보다는 힘이 난다. 그래 우리가 누구냐.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이 번영을 만들어 낸 우리들이지 않은가? 한번 또 힘을 내보자. 오늘 희망과 소망의 산등성이를 한 걸음씩 딛고 가보자, 그것이 내가 해 왔던 일이고 우리가 해 나가야 할 일이지 않은가.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처럼, 아래에서 쳐다볼 때는 너무 높아 보이던 그 정상이,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니,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었지만, 어느새 우리 앞에 있지 않던가? 그 정상에서 맛보던 그 시원한 바람과 가슴 벅찬 환희, 우리도 학교라는 산등성이에서 누려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