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환 논설실장. |
한반도 최서남단, 가거도는 예로부터 낙도와 오지라는 낙인이 숙명이었다.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36㎞, 4시간 이상 쾌속선을 타야 도착하는 먼 거리도 그렇지만 지금도 가거도는 풍랑이 거세지면 고립무원으로 몇 날 며칠을 묶여야 한다. 가거도 사람들에게도 가거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자투리 땅에 심은 보리와 고구마로 끼니를 때워야 했을 만큼 배고팠던 그들에게 바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친 바다로 나서는 뱃사람들도 자신이 태어난 섬을 바라보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시인 조태일은 이런 가거도를 두고 ‘너무 멀고 험해서/오히려 바다 같지 않는/거기/있는지 조차/없는지 조차 모르던 섬’이라고 했다. 너무 멀다 보니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 내며/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 때 높으신 분 들도/이곳까지는/차마 생각 못 했던’ 섬이기도 하다. 가거도는 또 선조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섬으로도 유명하다. 조기, 고등어, 삼치 파시가 때맞춰 성황을 이루고 후박나무를 중심으로 난대 원시림도 빼어난 비경을 자랑한다. 가거줄사초, 겨울딸기, 섬사철란 같은 자생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서남단 영해기점이라는 가치도 중요하다.
4일 해양영토 주권과 평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기 위한 가거도 순례단이 1박 2일 일정으로 가거도를 찾았다. 최근 중국의 동남정책에 따른 해상 침범 등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가거도의 가치는 크고 중요하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천혜의 생태와 환경을 갖춘 가거도의 미래도 어느 때보다 큰 위협에 직면해 있다. 생태 섬과 바람 섬, 파도 섬을 넘어 살만 한 섬으로 자리잡고 이제는 ‘지켜야 할 섬’이 된 가거도, 장맛비 속에서도 영토와 생태를 지키려는 순례단의 도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