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현 동주 |
‘팀장님과 일했던 팀원들 중 두 명이나 사장이 되었습니다. 잘 지도해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나면 꼭 팀장님 얘기를 합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탁월하지도, 후덕하지도 못했던 팀장이었는데 30여년의 직장생활이 그 한마디로 보람이 되고 영예가 되었다. 내 마음의 장소였던 문고에 들렸다가 뜻밖의 훈장을 받았다. 대형서점이 없었던 시기에 교보문고는 세상의 모든 선생님이 계신 학교였고 사람들에게 지식과 지혜, 희망을 주는 책의 숲 ,책의 바다였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모토로 광화문 1가 1번지, 금싸라기 빌딩에 이익도 되지 않는 서점을 만든 것은 문화보국이라는 창업주의 독특한 기업가 정신이 있어 가능 했다. 나를 성장시키고 미래를 준비했던 교보문고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의 장소, 위로의 장소가 되기에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찾아간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위로받고 위안을 얻는 말이나 장소가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백운동 원림에 촬영 왔었는데 담당 프로듀서가 꾸며지지 않은 자연이 너무 좋다. 이야깃거리가 수북하지만 번거롭지 않은 곳이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촬영이 끝나고 방송사로 복귀한 후에도 ‘잘 보존해줘서 고맙다.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제작해서 방송하겠다.’고 전화했다. 방송제작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장소가 된 것이니 그들이 남긴 웃음을 빌려 백운동 나무들조차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시인 나희덕은 어느 문학지에 ‘누구나 특별한 마음의 장소라는 게 있다. 살면서 지치고 외로울 때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듯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남 강진에 있는 백운동 별서 정원이다. 이따금 혼자 찾아가 툇마루에 앉아 있곤 하는데 동백꽃 뚝 뚝 떨어지던 기억이 오래된 물소리처럼 남아 있다. 동백꽃 밟으며 내려가는 길에 지팡이 짚고 그 계곡을 지났을 다산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나는 땅에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를 그의 “절뚝거리는 마음 하나”인양 주워들었다.’면서 본인만의 비밀의 장소를 발설 했다
백운동 수소실이나 정자에서 새처럼 앉아 있던 나희덕을 가끔 본적이 있었는데 백운동이 그이에겐 몸과 마음이 쉬어가는 마음의 장소였던가 보다.
최근 백운동을 방문했던 도종환 시인은 백운동이 왜 다산의 마음의 장소였는지를 행장(行狀) -죽은 사람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쓴 글- 을 쓰듯 시를 지어 보내 왔다.
…….모멸의 시간을 담대하게 지나는 그대여/ 삶은 곳곳이 낭떠러지이나/ 벼랑을 만나 더욱 수려해진 옥판봉 같은 산도 있으니/ 바위틈에서도 우뚝 자라는 팽나무 같은 나무도 있으니/ 상처 많은 그대여/ 길이 보이지 않아도 동백은 피고/ 길이 없어져도 별은 반짝이리니/......
도종환 시인은 살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나 돌파되지 않는 장벽들을 만날 때 백운동 옥판봉이나 팽나무를 보라고 한다. 말하자면 ‘자연의 이치’ 같은 것에서 위로 받으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누구에게나 이런 마음의 장소가 필요한데 요즘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사기 위해 온갖 축제가 열리고 있다. 꽃만 가지고도 매화부터 시작해서 벚꽃, 수선화 유채 튤립, 모란, 장미, 수국, 국화, 동백 등 세상의 모든 꽃이 축제의 재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수산물, 농산물, 음식, 공예 ,그림, 건축, 디자인, 자동차, 동물, 물 ,산, 바다 등을 주제로 사방천지가 축제다 보니 그 수와 비용을 헤아리기도 어렵다. 농번기에 일할 사람이 없어 도시에 사는 사위나 손자를 동원하는 농촌지역에서도 축제는 계속 된다. 차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바가지요금에 쓰레기로 몸살 하는 축제로 뒷말이 많다. 같은 꽃을 가지고도 동시다발적으로 축제를 여니 바로 옆 동네나 인접 군과도 겹치는 일이 다반사다. 같은 시기에 피는 꽃을 나무래야 할 판이다. 이러다가 나팔꽃이나 호박꽃 축제도 등장할 것 같다. 쇠퇴해가던 스페인의 지방 소도시 빌바오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시설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매년 13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수조원의 경제효과를 이뤄냈는데 이처럼 랜드 마크가 되는 건축물이나 문화시설로 지역부흥을 가져오는 것을 ‘빌바오 효과’라고 한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성과를 가져오려면 각 지역마다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축제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단순이 사람만 많이 오면 성공한 축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긍하기 어렵다. 물고기를 잡아다 죽이는 축제를 하거나 갯벌을 매립해 정원을 조성하는 등 비생태적이거나 지나치게 유흥중심으로 치우쳐 풍속을 해치기도 한다. 초대가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다. 연예기획사나 상인들의 돈벌이 잔치등 특정인들의 배를 불리는 로또식 축제가 지역이 바라는 ‘빌바오’성과를 가져오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서 지속적으로 찾게 되는 마음의 장소가 되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성행하는 축제에 치여 성당이나 절, 교회조차도 사람들의 마음의 장소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