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철거 감리자 없고 권한도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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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여전히 철거 감리자 없고 권한도 '무용지물'
●광주 학동 붕괴참사 2주기
허가제 건물 2개 제외 철거 완료
'철거 땐 감리자 철수' 관행따라
철거현장 관리·감독 부실 여전
인력난에 안전센터 부분 중지
전문가 "감리제 사각지대 해소를"
  • 입력 : 2023. 06.08(목) 18:52
  • 송민섭·정성현 기자
오는 9일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4구역 붕괴 현장에서 ‘학동참사 2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가운데, 학동4구역 내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정성현 기자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철거 붕괴 참사(학동참사)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관행처럼 이어지던 폐단은 아직도 철거현장에 여전하다. 상주해야 될 감리자는 현장에 보이지 않았고, 참사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설립된 지역건축센터도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참사 2년 무엇이 변했나

지난 7일 찾은 동구 학동 4구역 철거 현장.

재개발 지구 주변에는 긴 철제 안전 휀스가 빽빽히 세워져 있다. 울타리 넘어 솟아있던 붕괴 건물은 어느새 자취를 감춰 보이지 않았다.

약 3만8000평(12만5619㎡) 규모의 철거 현장은 대부분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시공사 현대환경산업이 동구청에 요청한 허가제 건물 41개 중 39개가 철거 완료됐고, 약 150건의 신고제 건물은 철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완료되지 못한 허가제 2건은 지주와의 금액적 견해 차이 등으로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다.

철거 마무리 작업과 함께 완료 후 발생한 폐기물 분출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곳곳에 쌓인 잔해들은 굴삭기·트럭 등을 통해 외부로 옮겨졌다. 그러나 현장 어디에도 이를 관리·감독하는 감리자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 관리소 관계자는 “(감리자는) 진작부터 없었다. 현재 현장 담당자는 현장소장 밖에 없다”며 “신고제 건물 철거 과정에서는 감리자가 필요없다. 현재 (허가·신고제 철거 이후) 폐기물 분출은 우리(시행사)가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물관리법 제32조에 따르면, 감리자는 해체 후 부지정리 등 마무리 작업 중 발생하는 건설폐기물이 적절히 처리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즉, 학동4구역 현장은 철거 최종 시점까지 책임져야할 감리자가 그보다 일찍이 관리·감독을 마친 것이다.

건설 전문가들은 ‘관행처럼 박힌 폐단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지역 건축전문가는 “법령·계약서 상 명시에 따라, 감리자는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잔해물들의 관리·감독 의무가 있다. 이를 어기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며 “그러나 건설 현장에서는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쉬쉬한다. 특히 다수의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더욱 지켜지지 않는다. 철거가 되면 대부분 현장에서 감리자는 철수하는 식이다. 결국 철거 마무리 단계에서 문제가 생길 시 이를 저지할 감독자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동4구역 철거감리사무소 관계자는 철거 감리 역할에는 문제가 없었다면서도, 폐기물 처리와 관련해서는 현재 허가제 건축 폐기물과 신고제 건축 폐기물이 뒤섞여 마땅히 처리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올 초 모든 작업을 마치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감리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다”면서 “벌써 수 개월이 지나 폐기물 분별이 힘든 상태다. (재활용·위험 폐기물 등) 잔해 처리 작업은 현재 시공사 측에서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개정된 제도 있으나 마나

변한 것이 없는 것은 학동 뿐만이 아니다.

학동참사 이후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설립된 광주 동구의 지역건축안전센터(안전센터)는 현재 거의 멈춘 상태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동구는 학동참사 이후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지난해 4월 전국 자치구 최초로 안전센터를 설립했다. 안전센터는 보통 건축 인허가 설계도서 검토, 건축공사장 안전점검, 노후건축물 점검 등의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건축사·건축 구조 기술사 등 2명의 실무자가 있어야 하지만 현재 실무자는 1명 뿐이다.

이는 전문인력의 평균 연봉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수준 때문이다.

동구 관계자는 “건축사나 기술사의 평균연봉은 억대가 넘는다. 하지만 안전센터는 6급 수준의 연봉이 책정돼 한참 못미친다”며 “구조 기술사가 광주, 전남, 전북을 합쳐도 30명이 채 안된다. 낮은 연봉에 구청까지 와서 일 할 전문인력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리자 권한도 큰 변화가 없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3월 주요 구조부 결함 등 중대 위험에 대해서는 감리에 공사 중지 명령을 의무화 했다. 이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감리자의 고의·과실이 없는 경우 감리에는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감리자에게 ‘공사 중지’라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된 셈이지만 지역 건설 현장 어디에서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지역 건축전문가는 “감리자에게 공사중지 명령권이 있지만 자칫 그에 따른 불이익이나 손해에 따른 책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면서 “명백한 부실 시공이 있지 않는 한 감리자가 선뜻 문제 제기를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공사 중지를 해도 해체공사업체와 감리자 간의 분쟁도 종종 발생한다”며 “감리업체가 시행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계약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민섭·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