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사이버펑크>아담의 후예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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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전남일보]사이버펑크>아담의 후예들이 왔다
만성피로 시달리는 뚝딱좌
  • 입력 : 2023. 05.11(목) 18:14
아담(Adam)을 기억하는가. 90년대 후반에 데뷔한 국내 1호 사이버가수다. 당시 아담의 세계관(사이버 매트릭스월드)에 따르면, 인간 여성을 사랑해 사이버 세계를 떠나 현실로 왔다고 한다. 키 178cm에 몸무게 68kg, 동양인과 서양인의 얼굴 중에서 청소년이 좋아하는 부분만 따다 합성한 외모. 훈남 프로필을 가진 한 아담의 정규 앨범 1집은 무려 20만장의 앨범이 팔리며 크게 유명세를 탔다. CF광고모델로 섭외되거나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아담의 인기가 높아지자 사이버 여대생, 사이버 기자 등도 우후죽순 탄생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활동이 뜸해지면서 아담은 자취를 감췄다. 항간에는 ‘아담이 입대했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었다’ 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소속사가 원인이었음’이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 기술로는 아담의 입 모양을 몇 분 간 움직이는 데 수억원의 돈이 들었다. 메타휴먼(meta-human), 즉 사이버인간은 죽지도 늙지도 않는 존재였지만 아담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본에 의해 죽임당한 셈이다.

이후 중국 활동 등으로 재개를 노려보기도 했으나, 2004년 전후로 아담을 탄생시킨 회사(아담소프트)가 파산해버렸다. 아담 목소리의 실제 주인인 가수 박성철이 아담시절 불렀던 곡을 앨범으로 발매하기도 했지만, 사이버가수의 실존 인물에 사람들은 크게 관심갖지 않았다. 그렇게 ‘부활’을 꿈꿨던 아담은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아담의 후예들’이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로지’나 ‘수아’, ‘리아’가 대표적이다. 마른 몸에 입체적인 외모를 가진 로지는 영원한 22세다. SNS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면서 ‘국내 첫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독특한 음색과 청량한 느낌의 가삿말이 매력적인 ‘바다 가자’라는 음반을 내,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보다 정교한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실제 인간과 흡사한 외모, 표정을 지닌 수아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실제 사람과 유사한 존재를 볼 때 생기는 불편한 느낌)’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세계 최초로 전신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메타 휴먼으로, 리얼타임 라이브로 사용자들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다.

리아는 4대보험이 가입된 정규직 회사원이다. 지난해에는 ‘메타 한복(META-HANBOK)’ 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의 한복공정에 대항하는 등 공익적인 활동을 펼쳐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메타휴먼은 악플에 상처받거나, 과거 품행·사생활 등으로 인한 구설에 휘말릴 걱정이 없다는 점에서 많은 광고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무엇보다 톱스타 연예인과 비교해 몸값이 낮은 점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대중이 열광할 수 있는 모습으로 뷰티나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 분야에서 활용도도 크다.

20여년 전 아담이 3D캐릭터 수준에 그쳤다면, 아담의 후예들은 보다 인간 가까이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생물학적 불멸(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삭제되지 않는 한)은 물론 사회적인 명성을 얻었고, 인간세계의 복지혜택(4대보험 가입)도 누린다.

그런데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든다. 우리는 왜 메타휴먼에 열광하는가. 지금도 유통업계는 ‘인간을 닮았지만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을 내세워 인간들에게 상품을 판매한다. 메타휴먼의 존재 이유가 마케팅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자본에 의한 아담의 죽음을 기억해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