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서석대>‘빵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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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서석대>‘빵셔틀’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3. 05.09(화) 18:30
이용환 논설실장
 학교 폭력의 현실은 알고 있던 것에 비해 훨씬 잔혹했다. 이유 없이 폭행을 가하고 수시로 잔심부름을 시켰다. 인격을 모욕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친구를 감금하고 폭행한 가해자가 자신도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100여 차례에 걸쳐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갈취한 학생, 3학년 언니가 돈을 달라기에 친구의 돈을 빼앗아 건넨 학생도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해 학생 상당수가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면 자신이 제물이 되는 학교폭력 안에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 2013년 SBS가 방영한 3부작 스페셜 ‘학교의 눈물-일진과 빵셔틀’은 학교폭력과 왕따, 빵셔틀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다큐멘터리였다. 특히 다큐멘터리가 다른 학교폭력 관련 다큐멘터리와 다른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잔혹한 게임의 패배자’라고 본 것이었다.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수면 위로 보이지 않는 일을 조명하고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인 서열과 세력, 권력을 따라하려 한다는 것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궁극적인 목표였다. 언제부턴가 ‘따돌림’은 10대 문화의 키워드가 됐다. 따돌림 문화를 상징하던 ‘왕따’도 새로운 언어인 ‘빵셔틀’로 바뀌었다. 빵셔틀은 ‘일진’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자기보다 약한 친구에게 매점으로 빵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청소년이 즐기는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셔틀’이 자원을 채취하듯, 빵셔틀 또한 학교에서 일꾼에 해당하는 친구들을 지칭하면서 그들을 부려먹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런 빵셔틀이 우려스러운 것은 모두의 묵인과 방조로 일어나는 우리 시대의 한계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이 빵셔틀 논란으로 뜨겁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회담을 두고 ‘빵셔틀 외교’라며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빵셔틀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고 고통을 안긴다는 점이다. 열등감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방해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빵셔틀 논란이 우리 모두의 묵인과 방조로 일어난 우리 시대의 한계라는 점이다. 못난 정치와 더 못난 정치인, 국정운영의 원칙이라던 국익과 실용, 공정과 상식 가운데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일방통행식 정부가 애먼 국민을 ‘왕따’ 시키고 ‘잔혹한 게임의 패배자’로 만들고 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