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현대판 자린고비 '거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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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현대판 자린고비 '거지방'
최권범 경제부장 겸 뉴스콘텐츠부장
  • 입력 : 2023. 05.08(월) 13:06
최권범 부장
외식비와 기름값, 공공요금 등 오르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청년층을 중심으로 소비를 줄이기 위한 SNS 오픈 채팅방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거지방’으로, 서로의 지출내역과 절약팁을 공유하는 채팅방이다. 거지방에서는 자신의 닉네임에 한 달의 지출 목표를 정해 놓고, 소비 계획이나 내역을 낱낱이 공유한다. 행여 택시를 탔다거나 프랜차이즈 커피를 사서 마시는 등 호사스런(?) 소비라도 했을 땐 모진 질책을 받고, 소비를 조장하거나 돈 자랑하는 글과 사진을 올릴 때에는 ‘강퇴’ 당하기도 한다. 흡사 보릿고개 시절, 지독한 구두쇠가 굴비 한 마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이를 반찬 삼아 쳐다보며 밥을 먹었다는 ‘자린고비’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거지방은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통이 아닌 놀이방식을 통해 긍정적으로 이겨내려는 청년 세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극단적 절약’을 추구하는 모습을 마냥 웃어넘기기엔 씁쓸하기만 하다. 일상적인 경제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사소한 소비조차도 줄여야만 하는 청년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지방의 등장은 코로나19와 고금리 장기화 등의 여파로 청년세대들의 빚이 급증한 게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코로나가 유행했던 지난 3년 동안 빚이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층은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30대 이하의 국내 은행권과 제2금융권을 합친 가계대출 잔액은 514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4분기 404조원보다 무려 27.4%나 늘어난 수치로, 전체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청년층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다보니 금리 인상기 늘어난 부채에 대응하기 어려워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경제난을 견뎌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 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극단적 절약’을 공유하는 거지방은 한동안 유행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한계에 직면한 청년들을 위한 채무구조 개선 등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