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광주 시민 진압에 투입됐던 최명용 예비역 소령이 20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계엄군 증언회에서 방청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김양배 기자 |
20일 광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회장 황일봉),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회장 정성국), 대한민국 특전사동지회(총재 최익봉)는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오늘의 증언이 5 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는 주제로 최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발포명령이 있었냐’는 질문에 최씨는 “직접적인 발포명령을 들은 적이 없다. 당시 최세창 3공수여단장은 ‘위험할 때 알아서 조치하라’고만 전했다. 하지만 그 명령은 사격명령과 다를 바 없었다. 실제 현장에서 광주시민을 상대로 총을 쏜 군인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교도소 이송과정에서 일어난 최루탄 질식사에 대해서는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트럭 3대에 부상자 200여명을 후송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참모이자 소령인 사람이 부상자를 몰아넣은 공간에 최루탄을 던지라고 지시한 것을 봤다. 그 일로 그나마 살아있던 사람들도 최루탄때문에 많이 죽어나갔다”며 “그 지시를 한 사람이 어떻게든 장군급까지 올라가려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어 직접 진급에 제동을 걸었었다”고 말했다.
5·18 진상규명의 핵심인 광주교도소 가·암매장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시신 17구를 묻으라 지시했다고도 고백했다.
최씨는 “교도소에 도착하자마자 사망자 17명을 교도소 공동묘지에 묻으라 지시했다”며 “5·18 이후 소속이 바뀌었는데도 어떻게 알고 보안사에서 찾아와 시신의 위치를 물어 위치를 알려줬다. 그래서 시신의 흔적이 다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최씨의 이같은 발언은 기존에도 알려진 사실을 확인하는 차원 정도여서 참석자들의 아쉬움을 샀다.
최씨는 교전이나 진압 현장이 아닌 상황실에서 무전을 주고받았던 상황실장이라는 이유로 여러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답변을 잇달아 내놓았고, 참다 못한 일부 참석자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최씨는 5·18 부상자들의 광주교도소 이동시간이나 헬기사격 등에 대한 질문에는 “상황실에만 있어서 그 현장을 모른다”, “사실 어떤 날이 18일인지, 20일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계엄군에게 끌려가 교도소와 상무대에서 고초를 겪었던 전중태(68)씨는 “행사 내내 너무 답답했다. 전남대나 광주역에서 광주교도소 가기까지 20~3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나나 다른 부상자들이 끌려갔을 때는 거의 3시간이 걸렸다. 당시에 밖을 볼 수 없었고 거의 정신을 잃었던 상태라 왜 그렇게까지 걸렸는지를 알고 싶었는데 작전참모라는 사람이 모르쇠로 일관하니 납득이 안간다”고 토로했다.
이런 답답함을 특전사회도 느꼈는지 인터뷰 행사 직후 ‘조사기구를 출범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는 지난달 14일 3공수여단 출신 김귀삼 중사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증언 행사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특전사회는 오는 24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5·18 계엄군 진상조사위원회(가칭)’를 구성해 발대식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3·7·11공수여단별로 각 20명씩을 구성해 5·18진상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매달 발표하겠다는 것이다.
임성록 특전사회 광주지부 고문은 이날 “5·18의 진실을 동지애로 보호하고 감추지 않겠다. 사죄하고 진실로 사건을 밝히며 광주에서 있었던 모든 참상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