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손자 사죄… “역사적 징벌 후대까지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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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손자 사죄… “역사적 징벌 후대까지 이어져”
● 전우원 광주방문이 남긴 것은
조부 대신 5·18 피해자·유족 속죄
“조부, 광주시민 대학살 주범” 사죄
광주시민사회, 무릎꿇은 전씨 포용
“꾸준히 지속된 심판의 결과” 평가
  • 입력 : 2023. 04.02(일) 18:17
  •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
전 대통령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31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내 1묘역 고 문재학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유혈진압하고 사죄 한 마디 없이 사망한 전두환씨를 대신해 손자인 전우원씨가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게 사죄했다. 지역사회는 무릎 꿇은 전씨를 포용했고, 응어리진 5·18의 아픔을 조금씩 풀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31일 전씨는 5·18기념문화센터와 국립5·18민주묘지 등을 찾아 오월어머니와 영령들에게 눈물을 보이며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

전씨는 “제게 사죄할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이 자리를 비롯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늦게 찾아뵙게 돼서, 더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서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용기로 군부독재에 맞섰던 광주시민 여러분들은 영웅인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하고 그 아픔을 더 깊게 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씨는 “내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주의가 역으로 흐르게 했다”며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일은 다신 있어서는 안 될 대학살이었고 그 주범은 나의 할아버지다”라고 고백했다.

이후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한 전씨는 열사들의 묘비를 본인의 옷으로 닦는가 하면,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을 찾아 치열했던 도청지킴이의 흔적을 둘러보고 오월어머니들을 만나 격려받기도 했다.

이날 전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1000여명의 열사들이 민주묘지에 잠들어있는 모습, 또한 선명한 헬기사격의 자국 등을 보며 어떻게 지금까지 모르고 외면하며 살아왔는지 후회가 된다”며 “오기 전에 돌팔매질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마음으로 (광주를)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했다. 앞으로 반성하고, 자만하지 않고 잊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씨가 눈물로 본인의 할아버지를 학살자라고 말하고 사과하자 광주 시민사회도 이에 적극 화답했다.

200여곳의 시민단체가 연대한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전두환 일가가 5·18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로 평가하며, 향후 5·18 진상규명 및 전두환의 책임을 확인하는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전두환 일가의 일원이 5·18을 두고 사죄를 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사한 사례로는 노태우씨의 아들인 노재헌씨가 2019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사죄의 뜻을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전씨가 입국 전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스스로도 혐의를 시인한 상황에서 사죄 행보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지역 학계는 전씨가 사죄에 나선 것과 관련 ‘당사자는 죽고 없지만 꾸준히 지속되는 역사적 심판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영태 전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당사자들의 사죄를 받지 못한 광주시민의 입장에서 전우원씨의 속죄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면서도 “다만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당대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았고,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박탈당했다. 사법적 처벌은 그렇게 끝났지만 43년이 지난 현재, 후손이 반성하겠다며 고개를 숙인 것은 법과 달리 역사적 징벌은 그 후대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