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병하 부장 |
다만 이번엔 전령을 데려왔다. 전우원이라는.
지난 주말, 전두환씨(신문에서 전두환에 ‘씨’라고 붙이는 것은 ‘전씨’라는 줄임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의 손자가 광주에 왔다. 만 27살의 젊디 젊은 그는 굉장히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럴만도 하다. 그가 광주에 가진 두려움은 사뭇 엄청났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와 광주는 원수 사이가 아닌가.
그래서인 그가 광주 오기 전 일부 사람들은 “약에 취해서 저런다” “재산을 나눠주지 않아서 그런 것” 등 20대 철부지의 막나가는 행동이라고 폄하했다.
광주 역시 술렁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씨의 핏줄이다. 그가 내린 명령으로 인해 아들이 죽었고, 딸이 죽었고, 형제가 죽었다. 그 핏자국이 아직도 선명한데 용서를 구해야 할 전씨는 이미 떠나버렸고, 그의 가족들은 예상했던 대로 호의호식 중이다.
그런데 이번 광주의 반응은 정말 달랐다.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은 “당신이 뭔 잘 못 있겠냐만 와줘서 고맙다”했고, 5월 공법 단체는 “괜찮다. 애썼다”라고 그를 안았다.
광주시민들도 이것저것 떠나서 “올 때 얼마나 걱정했겠냐”면서 “온 김에 쉬었다 가라”고 말했다.
어디 이 뿐일까. 그의 사죄에 한 유족은 울먹거리기도 했다. 전재수 열사의 형 전재룡(62)씨는 “그간 사무치게 원망했다. 그러나 오늘 이 응어리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못한 일을 이 젊은이가 해냈다. 가족으로서 광주시민으로서 정말 고맙다”며 묘역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랬다. 40여년의 엄청난 미움도, 사무치는 분노도 한 젊은이의 고개 숙임에 앞서지 않았다. 안으로 갈무리하고 그저 “애썼다”라며 그의 어깨를 두들길 뿐이었다.
어쩌다 이런 도시에서 태어나 살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걱정 되는 것이 있다.
오는 43주기 5·18을 앞두고 광주에서는 ‘분열’과 ‘반목’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유야 어찌됐던 이 단어를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이 무리들은 정말 광주에서 5월과 관련한 ‘분열’이 이뤄진다면 온갖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쏟아낼 것이 자명하다. 부디 전우원에게 보여준 그 따뜻함과 포용을 우리 내부에서도 다시 한번 이뤄주길 간원한다. 여기는 광주, 서럽고 가슴 아리지만 따뜻한 봄의 도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