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박찬규> 귀촌일기-농촌의 문화생활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아침을 열며·박찬규> 귀촌일기-농촌의 문화생활
박찬규 진이찬방식품연구센터장
  • 입력 : 2023. 03.22(수) 16:14
박찬규 센터장
농촌의 봄은 쉴 틈이 없다. 만물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면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그만큼 시간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겨울 동안 여유를 부리다가도 봄이 되면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귀농·귀촌한 뒤로는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겨울이 특히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귀농·귀촌자의 경우 농촌 생활을 접하면서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다 보니 가장 많이 갈등을 느끼는 부분이 의료시설 부족과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이다.

도시에서는 보고 싶은 공연이나 취미활동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농촌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농촌의 문화생활은 주로 마을회관에 모여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함에 따라 단체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과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으며 중 장년을 위한 놀이문화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요즘은 각 군·면마다 주민자치회를 통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비용 부담 없이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기획돼 운영된다.

필자의 경우도 일주일마다 2회의 문화강좌를 듣고 있다. 일과가 끝나고 야간에는 시 창작 교실, 주간에는 수묵화 반에 참여하고 있다. 시 창작 교실은 이대흠 선생님의 지도로 배우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늦은 밤에 농촌 제자들의 문화생활에 활력을 주고 있다. 수묵화 역시 전남명예예술인으로 지정돼 활동하고 있는 정인순 선생님이 지도해주고 있다.

농사일에 지쳐서 육체는 힘들어도 문화강좌를 듣고 나면 생활에 활력이 더해지고 의욕이 생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남도 해남의 경우에는 이처럼 평생교육의 개념이 도입돼 적지 않은 강좌가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은 중·장년의 연령대이지만 배우는 열기는 젊은 학생 못지않게 뜨겁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는 각종 라이브 공연을 농촌 마을에서는 접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전남의 경우 군 단위에서는 거의 공연을 볼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광주나 여수, 순천, 목포 등지에서는 드물게나마 공연을 감상할 기회가 있다. 이처럼 공연을 경험해볼 기회가 적으니 자연스럽게 공연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다.

요즘은 중소도시나 농촌지역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문화강좌나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받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공간 확충이 어렵고 프로그램의 수가 턱없이 적다. 서울 및 수도권과 달리 남도는 제조시설이 빈약하고 사업체들이 영세해 대부분 농업에 관심을 갖고 이주하지만 그들이 도시에서 즐기던 문화생활까지 잊고 사는 것은 아니다.

문화생활의 사전적 의미는 문화 가치의 실현에 노력해 문화 산물을 음미하고 즐기는 생활을 말한다. 여유가 생기면 도시에서처럼 원하는 취미생활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귀농·귀촌해서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역귀농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 주민들과 화합하지 못하거나 보고 즐길 수 있는 문화활동을 할 수 없다는 실망감 때문이다. 농촌의 하루 일과가 노동으로 힘들어도 여유시간을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은퇴 이후 시골에서 정을 붙이고 살아갈 만할 것이다.

최근에는 군마다 도서관이 확충돼 인맥이 부족한 귀농·귀촌인들이 농업 관련 지혜와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자료를 찾기도 편리해지고 제공하는 정보에 의지하면서 문화활동을 병행하기도 한다.

귀농·귀촌 후에는 일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가 도시에서보다 훨씬 지루한 일이다. 시골에서 일이 없다는 것은 고립이자 외로움이다. 딱히 갈 만한 데도 없고 친구를 만나서 대화라도 하고 싶은데 이웃들도 한창 바쁜 시기이다. 이럴 때 공간을 메워줄 문화공간이 필요하고 취미생활의 기반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농촌에서 적응하는 동안에는 그만큼 문화생활이 가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