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외교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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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조공외교의 대가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3. 03.19(일) 17:27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삼전도 굴욕은 우리나라의 치욕의 역사로 꼽힌다.

1636년 병자년에 터진 호란에서 인조 정권은 불과 50일도 버티지 못하고 청나라에 항복했다. 인조는 이듬해 1월 30일 삼전도로 나아가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후 힘없는 조선은 청나라에 조공(朝貢)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조공은 때를 맞춰 속국이 주국에 예물을 바치던 것을 뜻한다.

병자호란이후 조선의 조공은 가혹했다. 청나라는 방물(方物·조선시대에 중국에 보낸 토산물)외에 세폐(歲幣·해마다 음력 10월에 청에 보내던 공물)을 추가했다. 특히 방물과 달리 세폐는 청측이 강제로 그 양을 책정했는데, 식량 사정이 매우 좋지 않던 청은 매해 세폐미 1만석을 바치게 했다고 한다.

1644년 북경을 정복한 청은 입관과 함께 식량사정이 더욱 급해져서 소현세자를 통해 겨울 전에 5000석을 조공할 것을 요구했다. 이듬해 2월에는 무려 20만석을 요구했다가 10만석으로 감면해주었다. 조선은 전국에서 300척의 배와 7000여명의 인원을 모아 곡물을 지급해야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대대적인 수탈로 조선의 백성들은 기근 등의 고통을 겪었고, 조선은 국가재정상 연평균 전 20만량 이상의 손실을, 칙행시에는 40만량에 달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고 기록돼 있다.

민족의 뼈아픈 수탈 역사로 기록될 조공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17일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윤 정부가 지난 6일 강제동원 해법을 공식 발표한 지 열흘 만이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는 이날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을 “옛 조선 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관한 조치”라고 표현했다. 이를 적극 부인해야 할 윤 대통령이 방긋 웃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생중계 됐다.

회견을 지켜본 정치권과 시민들은 “선물 보따리는 잔뜩 들고 갔는데, 돌아오는 길은 빈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상 ‘조공외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 한일 양국은 강제동원 배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수출 규제 조치까지 바로잡아야 할 현안이 그야말로 산적해 있다.

일제 수탈의 역사를 망각하고 윤 정부가 한일간 셔틀외교 복원을 위해 ‘조공외교’를 펼칠 경우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민의 안전마저 해치는 혹독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