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84-4> 몸통 책임자 솜방망이 처벌… 되풀이 되는 대형사고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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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84-4> 몸통 책임자 솜방망이 처벌… 되풀이 되는 대형사고 막을 수 있을까
●학동 참사 1심 분석해보니
원청은 집유·하청은 실형
현산 ‘내 책임 아냐’ 회피
잠원동 참사 공판서도 감형
피해자 “책임자 처벌 우선”
  • 입력 : 2023. 01.08(일) 18:48
  •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
법원.
 지난 2021년 6월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 붕괴 사고와 관련해 하청업체 관계자들은 실형, 원청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 관계자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몸통 봐주기식 판결’ 논란이 일었다. 수년 전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 때도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인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박현수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건축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 현산과 하청·재하청 업체 관리자, 감리 등 7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최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들은 철거 공사에 대한 안전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학동 재개발 4구역에서 철거 중인 지하 1층·지상 5층 건물의 붕괴를 초래해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현산 현장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으며 현산 공무부장·안전부장에게 각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청업체 한솔 현장소장은 징역 2년6개월, 재하청업체 백솔 대표는 징역 3년6개월을, 감리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다원이앤씨 현장소장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현산에는 벌금 2000만원, 한솔·백솔에는 각각 벌금 2000만원과 3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윤만 추구하는 안전불감증이 참사의 배경”이라며 “공사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 의무 정도와 공사 관여 정도, 독자적인 의사 결정권을 감안하되 개별적인 정상들까지 종합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원청인 현산 측이 해체 공사 중 관리, 감독 역할을 해야 하는 구체적인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현산은 안전규칙 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만큼 해체계획서 미준수, 안전성 검사 미실시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판결 이후 지역 시민단체들은 “몸통은 내버려 둔 채, 깃털들만을 건드린 전형적인 봐주기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 이후 광주고등·대전고법 산하 법원과 특허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현산에 대한 처벌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서울 성북구을)은 “해당 판결은 전형적인 봐주기 판결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합리가 재현된 결과”라고 말했다.

 검찰은 양형 부당과 사실 오인 및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공판에서도 원청 관계자들은 붕괴와 관련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일각에선 학동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원인부터 재판 결과까지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9년 서울 잠원동에서 철거 중이던 지상 5층·지하 1층짜리 건물이 무너지면서 지나던 차량 3대를 덮쳐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재판부는 “공사 이윤을 남기려 무리한 철거를 했다”고 지적했지만, 현장 관리소장과 감리업체 관계자에게 내려진 처벌은 징역 3년과 금고 1년6개월 등 비교적 가벼웠다. 나머지도 집행유예와 벌금형에 그쳤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이유로 감형해 현장 관리소장은 징역 2년, 감리업체 관계자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되풀이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선 책임자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참사 이후 불법 재하도급 처벌 규정 강화 법안, 부실 감리 방지 위한 주택법 개정안 등 수많은 안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대다수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 진행 중인 ‘화정동 아파트 붕괴 참사’ 재판에 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 관계자는 “(학동 붕괴참사 1심은) 전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져야 할 원청 대신 하청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건설 현장의 부조리함에 대해 사법부도 눈감은 셈이다. 참사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