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의 모 사립고등학교 본관 4층에 위치한 2학년 교무실. 뉴시스 |
1일 광주 서부경찰에 따르면 광주 서구의 모 사립고등학교에서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답안지를 빼돌린 혐의(업무방해·건조물 침입·정보통신망법 위반)로 2학년생 A·B군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이날 경찰은 A·B군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응시 과목 전부를 유출하려고 시도했으나 일부 과목(중간고사:지구과학·한국사·영어, 기말고사:영어)은 여러 이유로 반출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앞서 두 시험에서 공통적으로 영어 과목이 유출되지 않아 그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경찰은 조사 결과 보안상의 이유로 영어 시험·답안지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영어 시험을 출제한 두 교사의 노트북 중 한 대는 악성코드 파일이 보안 프로그램에 막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고, 나머지 한 대는 교사가 개인적으로 지정한 PIN번호(Personal Identification Number)를 학생들이 알아내지 못해 유출에 실패했다.
이처럼 보안에 가로막혔거나 노트북이 자리에 없었던 등의 이유로 A·B군은 13~14회에 걸쳐 학교를 무단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인 오후 10시 이후를 노려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A·B군은 올해 1월에 범행을 공모했으며 중간고사를 앞둔 3월 중순부터 시험·답안지를 빼돌리기 시작했다.
두 학생은 본관 1층의 열려있는 창문으로 들어가 4층까지 계단으로 이동했다. 문이 열려있던 소강당에 들어가 창문 난간을 딛고 바로 옆 공간인 2학년 교무실로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2층의 본 교무실과 별관의 2층 진로상담실에도 몰래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A·B군이 학교를 무단으로 활보하는 동안 보안시설이 작동되지 않았고 당직교사마저 침입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에 허술한 교내 보안 문제가 지적받고 있다. 학생들은 최초로 학교에 무단으로 들어섰을 당시 보안경보가 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채고 이후 수 차례 오고간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해당 학교는 올해 1월 중순부터 진행한 내부 공사로 벽을 허무는 작업 때문에 이때부터 보안설비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노트북에서는 시험지가 암호도 걸리지 않은 채 파일 형태로 남아있어 학생들이 시험·답안지 원본을 빼돌린 사태가 알려지면서 정보 보안도 허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교육청의 '2022년도 광주고교 학업성적 관리 매뉴얼'에는 '지필평가 원안 파일 비밀번호 설정' '네트워크 전송 금지' '평가 자료 하드디스크 저장 금지' '이동식 저장 장치(USB·외장하드 등) 저장' '교사 컴퓨터 화면 보호기 비밀번호 설정' 등이 명시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한편 두 학생은 USB를 이용한 범행을 벌이기 전 '페이로드'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험·답안지를 빼돌리려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페이로드'는 실행되면 원격으로 명령어를 입력해 캡처를 해서 명령자의 기기에 파일을 전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컴퓨터에 능한 B군이 페이로드의 기본 파일을 인터넷에서 구해 이를 변형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USB에 비해 학교 침입을 덜할 수 있어 범행 초기에는 페이로드로 시험지 유출을 시도했으나 프로그램이 불완전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나중에는 USB를 이용한 악성코드 수법으로 변경한 것이다. 현재 경찰은 악성코드를 담았던 USB는 확보했지만 시험·답안지 파일 회수용 USB는 학생들이 잃어버렸다고 진술하며 찾아내지 못했다.
광주 서부경찰 관계자는 "현재 두 학생들이 반성하고 있으며, 미성년자인 점과 별도의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적어 구속영장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의 경우 프로그램을 조작해 악용한 B군뿐만 아니라 범행에 가담한 A군에게까지 추가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