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57-1> 제주 4·3서 '여순사건' 나아갈 길 찾자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일주이슈
일주이슈 57-1> 제주 4·3서 '여순사건' 나아갈 길 찾자
20여년 앞서 특별법·보고서 발간||“배·보상보다는 철저한 진상규명”||양보·포용·타협 시행착오 최소화||협의체 구성 공감대·공론화 필요
  • 입력 : 2022. 04.03(일) 18:00
  • 홍성장 기자

4·3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을 위로하기 위한 비석 4000여기가 행방불명된 지역 및 예비검속으로 구분돼 세워져 있다.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은 제주 4·3사건과 닮은 '쌍둥이 사건'이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위한 움직임은 사뭇 다르다. 여전히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4·3은 20여 년을 앞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22년 전인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이 시행됐고, 3년 뒤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가 발간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과거사를 재조명한 최초의 '법정보고서'다. 보고서 발간 이후 정부의 사과, 추모기념일 지정, 평화공원 조성, 유해발굴 등이 차례로 진행됐다. 노무현 대통령 2차례, 문재인 대통령 2차례 등 모두 4차례에 걸친 대통령의 사과도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등 명예회복 절차도 진행 중이다.

여순사건은 이제 시작이다. 지난해 특별법 제정에 이어 올 초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여순사건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여순사건 발생 74년 만이다.

인터뷰 중인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제주4·3평화재단 고희범 이사장이 강조한 것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다. 그는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잘 해야 되는 것이 진상규명"이라고 했다. 그는 "배상이나 보상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 4·3이 이미 받았으니 여순도 당연히 받는 것이다"며 "액수도 여기에 준해서 나올 테니 걱정할 것 없다. 진상조사 정말 잘해야 한다. 군경이 자료를 잘 내놓지도 않는다"고 했다.

고 이사장은 "4·3과 여순은 같으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4·3은 싸움을 통해 진상규명을 했다. 행사 하나 하더라도 한 두명 잡혀갈 생각을 해야 했을 정도다. 그런 것이 (진상규명을 위한) 동력이 됐고, 뭉치는 계기로 작용했다"며 "여순은 일하기는 편해졌지만 상대적으로 동력이 모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고 이사장은 '진상보고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고 이사장은 "제대로 된 진상보고서가 나와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가 사과도 하고 추념사업 등도 진행되는 것"이라며 "보고서를 쓸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열악한 형편인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제주특별자치도 강민철 4·3지원과장은 좀 더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그는 "제주 4·3이 걸어온 길은 양보도 있었고, 포용도 타협도 하는 등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며 "(여순도)한꺼번에 뚝닥 하겠다는 이런 것보다는 저희가 밟아온 과정을 보면서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과정으로 (진상규명이나 명예회복이)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4·3과 달리 여순은 여러 지자체가 걸쳐 있기 때문에 협의체를 구성해서 공감대를 만들고, 공론화를 통해 진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지자체간 협의체를 꾸리든, 전남도가 나서서 하든 협의와 타협 속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대 고성만 교수는 좀더 신중한 입장이다. 고 교수는 '4·3 과거청산은 다른 지역 과거사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발제를 통해 "제주사람들의 과거청산 노력과 공과는 결코 부정될 수 없지만 그것을 '기준'이나 '모델', '모범'으로 서둘러 치장하고 '전국화' 전략과 연동시키려는 움직임에는 조금 더 긴 호흡을 통한 분석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4·3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념 공간. 4·3피해자로 공식 인정된 1만4000여 명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