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황량한 아름다움 끝에 존재하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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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사이버펑크>황량한 아름다움 끝에 존재하는 미래
  • 입력 : 2021. 12.02(목) 17:54
  • 곽지혜 기자

'오래된 미래'

웅장한 모래사막,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과 능선만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아라키스는 척박한 황무지다.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역설적으로 등장하는 기계 문명이 묘하게 대비되며 현 인류의 2만년 후쯤 되는 미래의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파도처럼 몰아넣는다.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듄'에서는 이 사막 행성을 포함한 우주의 여러 가문과 세력이 등장한다.

각 행성의 생태계와 그 안에 구성된 신분 사회, 종교 문화, 절대적 가치를 지닌 물질과 영웅의 탄생까지, 듄의 방대한 세계관은 SF 장르 추종자들은 물론 전 세계 영화광들에게 신드롬을 일으키기 충분해 보였다.

듄은 SF 문학의 고전으로 불린 총 6권 분량 원작 소설의 방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서사 때문에 많은 감독들에게 영화상으로 구현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히면서도 쉽사리 도전할 수 없는 '독이 든 성배'와 같이 여겨졌다.

1984년에는 데이빗 린치 감독이 처음으로 영화화했지만, 당초 계획했던 분량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2시간17분이라는 런닝타임으로 개봉, 원작에서 중요한 내용 등을 손실하며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37년만에 '콘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 등 작품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SF 영화계의 신흥 거장으로 불리는 드니 빌뇌브 감독을 통해 재탄생된 것이다.

현재에 듄이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각기 다른 행성에 거주하는 다행성종족(multi-planetary species)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인과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고뇌는 미래보다 우리의 과거, 그리고 현재와 더 닮아 있다는 점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닌 자원 '스파이스'를 놓고 갈등하고 제국과 공작, 남작과 같은 신분 지위가 존재한다.

그로 인한 정치적인 역학관계나 인간의 탐욕, 삶에 대한 의지와 성장 과정은 오히려 고전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듄에서 구현한 세계가 허무맹랑한 공상 속 이야기가 아닌 '오래된 미래'로 여겨지며 피부에 와닿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행성종족'

실제 이러한 다행성종족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현실화는 이미 우리 곁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행성종족은 여러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를 일컫는 말로 테슬라의 창업주로 잘 알려진 일론 머스크가 최근 인류의 화성 거주를 이뤄내겠다는 발언에서 이슈가 된 개념이기도 하다.

20년 전 화성에 실험용 소형 온실을 설치해 식물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화성 오아시스'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한 그는 곧바로 스페이스X를 창립하고 인류를 다행성종족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실현시키고 있다.

많은 이들은 그의 '화성 이주' 발언에 돈만 낭비하는 일이라며 만류와 조롱을 일삼았지만, 그는 실제로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을 개발, '팔콘 9'과 '팔콘 헤비'를 쏘아 올렸으며 지난 9월에는 사상 최초로 순수 민간인만 탑승한 우주선 '크루 드래건'이 비행에 성공했다.

스페이스X의 민간인 우주비행 프로젝트의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카운트다운 : 인스퍼레이션4 우주로 향하다'를 시청하면 평범한 사람들도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는 일론 머스크의 말이 허황되지 않았음을 체감할 수 있다.

그동안 우주 산업은 냉전기 미국과 소련처럼 방위와 밀접한 관련성으로 국가 간 경쟁 구도로 발전해왔지만, 이제는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 기술 개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실현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묵묵히 걸어가며 끝내 성공하는 이들에게 크게 열광한다. 그것이 인류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달 국내 기술로만 만든 한국 최초의 발사체인 누리호가 우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성공이나 실패 여하에 관계없이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도 이러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행성 간 여행이나 이동이 자유로워진다면 국가와 인종 등 그동안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의 규모도 달라질 것이다. 국가에 대한 인식이 재편될 가능성도 높다. 인류는 아마 또 한 번 큰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다행성종족으로의 우리 미래가 황량한 사막일지, 많은 이들이 꿈꾸는 낙원이 될지, 또 다른 지구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허나 다음 여름휴가를 어느 행성에서 보낼까 상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주로 향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충분히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이 아닐까.

그래픽=서여운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