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 베란다 실외기 공간 틈 사이로 비둘기가 들어와 살고 있다. 독자 제공

광주 서구 풍암동의 한 아파트 베란다 실외기 공간이 비둘기의 오물로 범벅돼 있다. 독자 제공
평화의 상징이자 광주의 시조(市鳥)인 비둘기가 광주 시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아파트 실외기 공간을 중심으로 둥지를 틀고 각종 오물을 남기며 번식하는 비둘기 때문에 상당수 아파트 주민들은 악취와 소음, 그리고 기기 파손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광주 서구 풍암동 한 아파트에 사는 정모(51)씨는 지난 여름 에어컨을 켤 수 없었다. 비둘기가 실외기 틈새를 오가며 수차례 배설물을 투척한 탓에 실외기가 녹슬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처음에는 '잠깐 머물고 가겠지'라고 생각해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실외기 공간을 분양 받은 것 마냥 제집으로 생각하고 다니더라"고 말했다.
비둘기의 주서식지는 암벽 등 바위 틈이다. 먹이가 풍부한 도시에서 바위 틈과 비슷한 장소를 찾다가 실외기 주변에 자리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시민들의 불만은 오물 뿐만이 아니다.
비둘기 특유의 울음소리는 소음을 유발한다. 또 비둘기의 배설물 속 곰팡이균이 여러 질병을 일으킬 수 있어 베란다 문을 열고 환기시키길 꺼려하는 이들도 있다.
정씨는 "딸 아이 방과 실외기가 붙어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비둘기 울음소리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 거주하는 김모(57) 씨는 유독 본인 집 실외기로만 날아드는 비둘기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비둘기를 쫓아내려고 별 방법을 동원했다"며 "막대기로도 밀어보고, 물을 뿌려봐도 비둘기가 자꾸만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비둘기가 떠나지 않아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구청에 민원을 넣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냥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만 들었다"며 "아파트나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15일 광주시에 따르면, 비둘기 관련 접수 민원은 △2018년 63건 △2019년 58건 △2020년 59건이다.
방법이 없기는 광주시도 마찬가지다.
광주시 관계자는 "비둘기를 잡아달라는 요청도 있지만 무분별하게 총기나 덫으로 비둘기를 잡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부적절하다"며 "2016년부터 비둘기 기피제 100여 상자를 5개 자치구에 배분·지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공원이나 주요 시설물 중심의 임시방편이었을 뿐, 비둘기로 피해를 겪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대책은 전무했다.
견디다 못한 시민들은 사비를 들여 비둘기를 쫓아내기도 한다. 현재 사설 업체를 통한 비둘기 퇴치 작업비는 25만원부터 시작한다.
비둘기 퇴치 시공 업체 관계자는 "2018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비둘기 관련 시공 주문이 빗발쳤다. 실외기 공간을 청소하고 비둘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차단망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비둘기를 내쫓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성하철 전남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는 "비둘기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번식을 제한시켜야 한다"며 "비둘기의 번식력을 억제하면서도 생명체를 다루는 정책이니 만큼 자연스럽게 알을 낳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일단 비둘기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둥지를 틀게 한 다음 산란하면 알을 빼내 처리하거나 가짜 알을 두어 더이상 알을 낳지 않게끔 유도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비둘기가 모이는 부지를 선정하는 데 있어 민가를 피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광주 서구 풍암동의 한 아파트 베라나 실외기 공간에 비둘기가 알을 낳은 모습이다. 독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