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 100일간 3번 피고 지는 '배롱나무 꽃너울' 황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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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100일간 3번 피고 지는 '배롱나무 꽃너울' 황홀경
담양 후산마을||'인조반정 주역' 오희도의 아들||오이정이 지은 명옥헌 원림||소쇄원과 함께 대표 민간정원||누정·노송·배롱나무 '그림 풍경'
  • 입력 : 2021. 08.12(목) 15:31
  • 편집에디터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 못 가고, 열흘 붉은 꽃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분홍 꽃으로 100일 동안 유혹하는 꽃이 있다. 꽃 한 송이가 100일 동안 활짝 피어있는 건 아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배롱나무꽃이다.

배롱나무꽃 핀 풍경은 명옥헌원림이 압권이다. 붉은 꽃너울이 누정 앞 연못에 비쳐 반영되는 풍경도 매혹적이다. 하여, 여기 배롱나무꽃은 두 번 봐야 한다. 꽃이 활짝 피어 꽃너울을 이룰 때, 그리고 꽃잎이 떨어져 연못에 가득할 때다.

명옥헌. 원림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명옥헌. 원림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명옥헌원림의 배롱나무 꽃너울. 이돈삼

명옥헌원림으로 간다.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에 있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진분홍색 배롱나무꽃이 도로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후산마을에서 명옥헌원림으로 가는 골목에 감나무가 많이 보인다. 한낮의 햇살이 감을 토실토실 살찌우고, 익어가게 한다. 대추나무에 대추도 주렁주렁 걸렸다. 가시나무 생울타리에 열린 탱자도 탱글탱글하다. 담장 아래에는 백일홍, 봉숭아, 나리, 벌개미취가 피어있다. 형형색색으로 핀 꽃이 예쁘다. 담장 위의 능소화, 계요등도 시선을 유혹한다. 꽃을 찾아다니는 나비들의 날갯짓이 유난히 부산하다.

명옥헌원림의 배롱나무 꽃너울. 이돈삼

명옥헌원림의 연못. 진분홍 배롱나무꽃과 연분홍 홍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돈삼

명옥헌원림의 연못. 진분홍 배롱나무꽃과 연분홍 홍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돈삼

명옥헌원림의 연못. 진분홍 배롱나무꽃과 연분홍 홍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돈삼

명옥헌의 문을 통해서 본 배롱나무 꽃너울. 이돈삼

은행나무 고목을 먼저 만나러 간다. 이른바 '인조대왕 계마행(繫馬杏)'이다.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기 전, 오희도(1583~1623)를 만나러 와서 말의 고삐를 맸다는 나무다. 당시 오동나무와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은행나무만 남았단다. 은행나무의 키가 30m, 둘레는 7∼8m에 이른다.

능양군에게 오희도를 추천한 사람이 월봉 고부천이다. 고부천은 호남창의군의 맹장 제봉 고경명의 손자다. 하지만 오희도는 능양군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다. 노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목청꿀. 벌떼가 은행나무에 꿀단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돈삼

목청꿀. 벌떼가 은행나무에 꿀단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돈삼

은행나무에 걸린 노란 물건이 얼핏 보인다. 흡사 꿀단지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와 벌이 함께 만든 '목청꿀'이다. 벌들이 왁실덕실하다. 고목이 품은 참꿀을 한참 올려다봤다. 나무 오른쪽으로 오희도의 생가 터가 있다. 부근에 유허비도 세워져 있다.

은행나무 고목을 뒤로 하고, 명옥헌원림으로 간다. 골목을 따라 걸으며 소담한 벽화를 만난다. 솔방솔방 걸으며 두리번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백일홍 꽃. 배롱나무와 다른, 진짜 백일홍이다. 이돈삼

백일홍 꽃. 배롱나무와 다른, 진짜 백일홍이다. 이돈삼

골목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배롱나무 진분홍 꽃너울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여름 내내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고 '백일홍나무' '목백일홍'으로 불리는 나무다. 벼가 익어 갈 무렵 붉은빛이 바래면서 쌀밥을 먹을 때가 된다고 '쌀밥나무', 가지가 간지럼을 탄다고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진분홍 배롱나무꽃이 연분홍 홍련과 어우러져 있다. 땅속줄기인 연근은 논두렁을 뚫고 뻗어나갈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연이 나오면, 그 일대가 연밭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다. 명옥헌원림의 연못이 연밭으로 변해 있다. 진분홍 배롱나무꽃이 연분홍의 홍련과 어우러진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인조대왕계마행,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기 전, 오희도를 만나러 왔다가 말을 매어뒀다는 나무다. 이돈삼

인조대왕계마행,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기 전, 오희도를 만나러 왔다가 말을 매어뒀다는 나무다. 이돈삼

인조대왕계마행,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기 전, 오희도를 만나러 왔다가 말을 매어뒀다는 나무다. 이돈삼

배롱나무꽃은 연못에도 떠 있다. 꽃잎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멋스럽다. 누정 옆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에서 살랑거리는 꽃잎도 시적인 풍경이다. 무더운 한낮에도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명옥헌원림은 소쇄원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민간정원으로 꼽힌다. 오희도의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글을 읽은 별장이다. '맑은계곡(明谷)'이라는 호를 지닌 오희도는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한 인조반정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원림은 오이정이, 아버지가 살던 곳에 조성했다. 우암 송시열이 그의 제자 오기석(1651~1702)을 아끼는 마음으로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 짓고 계곡 바위에 새겼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구슬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아름답다고 이름 붙였다.

오기석의 손자 오대경(1689~1761)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연못을 팠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둥그런 섬도 만들었다.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누정을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주변에 적송과 배롱나무를 심었다.

누정과 아름드리 노송, 배롱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계곡물을 따라 판 연못과 연못 가운데의 둥근 섬까지 아주 자연스럽다. 정원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뒷산까지도 조화롭다. 자연경관을 그대로 빌려왔다. 차경(借景)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정원이다.

"연못 주위에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장엄하게 포치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야를 끌어들임으로써 더없이 시원한 공간을 창출한 뛰어난 원림이다." 유홍준도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극찬했다.

후산마을 길. 주차장에서 명옥헌원림으로 가는 길이다. 이돈삼

누정에 앉아서 보는 정원이 황홀경이다. 배롱나무 꽃너울과 연못, 노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누정의 기둥과 방문 사이로 펼쳐지는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연못가를 오가는 사람들은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 된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도 들려온다.

후산마을 길. 주차장에서 명옥헌원림으로 가는 길이다. 이돈삼

명옥헌원림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2011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도 받았다. 아름다운 숲 대회는 생명의숲과 유한킴벌리, 산림청이 주관한다.

오희도의 16대손 오병철·부인 가현정 씨가 운영하는 후산농원도 마을에 있다. 이들은 고향을 지키며 단감,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체험과 인문학 배움터 운영도 알찬 프로그램이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후산마을 길. 주차장에서 명옥헌원림으로 가는 길이다. 이돈삼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