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소리에 말도 못했는데… 기릴 날 올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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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빨갱이 소리에 말도 못했는데… 기릴 날 올줄이야"
광주일고서 제2회 장재성 추모제||유가족 아들·손자 첫 참석 눈길 ||학생운동 주역 명예졸업장 수여 ||극단 토박이서 일대기 다뤄 초연
  • 입력 : 2021. 07.05(월) 18:19
  • 도선인 기자

지난해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생긴 '장재성 교실' 앞에서 선 그의 후손들. 왼쪽부터 장재성 선생의 2년 후배로 알려진 통일운동가 이기홍 선생의 딸 이경순 씨, 장재성 선생의 아들 장상백 씨, 장재성 선생의 손자 장현영·장윤영 씨.

"나의 조국은 나의 죄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라.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것이 잘못인가. 갈라진 조국을 원치 않았던 것이 잘못인가."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5일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제2회 장재성 선생 추모제가 진행됐다. 이날 추모제에서 장재성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이 공연돼, 장재성 선생을 설명하는 대사의 한 대목이 무대에 울려 퍼졌다. 공연은 지역 극단 토박이의 창작극으로 이날 초연했다.

장재성 선생은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당시인 1926년 동창 왕재일·최규창 선생과 함께 비밀조직인 성진회를 결성해 일제 저항운동을 했다. 졸업 후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부근에서 일어난 학생출동 사건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확산시켜 민족운동 선봉에 섰다. 이로 인해 장재성 선생은 구속돼 4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분단된 조국을 반대하며 남북대표자 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월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광주형무소 수감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시국사범으로 몰려 총살당했다. 최근에서야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장재성 선생이 처형당한 장소가 산동교 인근 야산(현 북구 운암동 일대)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당시 광주형무소는 형량이 높은 이들부터 처형했는데,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장재성 선생이 처형 대상 1호였다. 7월5일 처형당한 장 선생 시체는 27일 수습됐다. 아들 장상백 씨는 전남일보와의 취재를 통해, 산동교 야산에서 500구 가까이 되는 시체 더미 속에서 신원을 분별하기 힘들 만큼 심하게 부패된 부친의 주검을 찾기 어려웠다고 증언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5일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제2회 장재성 선생 추모제가 진행됐다.

특히 이날 추모제에는 그의 아들 장상백 씨가 처음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장재성 선생의 후손인 장윤영 씨는 "빨갱이 집안이라 손가락질받던 과거에서 점점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발전하고 있음을 느낀다"며 "할아버지의 용맹스러운 삶을 한 장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돼 감사한 하루다"고 말했다.

후손들은 장재성 선생이 총살당하는 장면에서 마음을 저렸다. 윤영 씨는 "얼마 전 마지막 총살 장소가 역사적으로 밝혀졌는데, 연극의 한 장면으로 본 그날의 참상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며 "공식적으로 진행된 제2회 추모제에 이어 취소된 서훈 문제도 하루빨리 해결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장재성 선생의 2년 후배로 알려진 통일운동가 이기홍 선생의 딸 이경순 씨는 이날 추모제를 가리켜 숨겨왔던 사건의 역사 진입 첫 순간이라고 말했다. 경순 씨는 "빨갱이라 지탄받아온 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을 공식적으로 추모할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오는구나"라며 "오랜 시간 이념의 잣대로 인해 이분들을 기리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는데, 앞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후손들의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오늘날 역사에서 장재성 선생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하지 못하고 있음에 마음이 아프다"며 "학생독립운동을 이끌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한 장재성 선생을 불법적으로 가두고 돌아가시게 한 빚이 많다. 앞으로 장재성 선생의 이념과 사상을 어떻게 전승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로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 위장환 선생의 명예졸업장도 전달됐다. 명예졸업장 수여에는 위장환 선생의 외손자 위해춘 씨가 나섰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